제주 최초 장애인 바리스타 커피전문점 ‘플로베’ 1주년 맞아

▲ 플로베 개업 때부터 근무한 강승호씨(25)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첫돌 기념 선물입니다. 꽃 한 송이씩 가져가세요”

지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플로베(Flove)’가 지난 25일 개업 1주년을 맞아 모든 손님들에게 꽃 한 송이씩을 분양했다. 플라워(Flover, 꽃)와 러브(Love, 사랑)를 합쳐 만든 ‘꽃향기가 피어나는 사랑스런 정원’이라는 뜻의 ‘플로베’ 다운 선물이었다.

플로베가 처음 문을 열었던 지난해 9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화훼와 도자기, 농산물 등에 대한 직무교육을 실시하던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일배움터는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닌 서비스 직무를 교육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생각은 곧 ‘바리스타 교육’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 제주시 도남동 제주상공회의소 인근에 위치한 플로베.

교육을 이수한 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 일자리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일배움터는 기존에 익혀뒀던 화훼 직무와 바리스타를 접목한 ‘플라워카페’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개업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창업자본’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에서 1억원을 지원 받아 건물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 임대료와 인테리어비, 운영비 등은 후원금과 일배움터 자부담으로 충당했다.

후원과 재능기부를 실천한 아산복지재단, 김영심 도의원, 푸르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부원장, 넥슨 김종현 제주본부장, 제주지역 바리스타 등이 바로 오늘날 ‘플로베’를 있게한 숨은 주역들이다.

제주시 도남동 제주상공회의소 근처에 둥지를 튼 ‘플로베’. 1년 후 찾아간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 카페에 들어서자 왕희령(24)씨가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플로베입니다”

겸연쩍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 왕희령씨(25·남)는 일한 지 딱 1년이 됐다. 희령씨 외에 강승호씨(25·남)와 신아나씨(23·여)도 개업 때부터 함께 해 온 식구들이다. ‘큰언니’ 역할을 맡던 장선아씨(31·여)는 일반사업장으로 이직해 현재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선아씨의 빈 자리는 일배움터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이수한 고민수씨(23·남)가 채웠다. 임 부장의 말에 따르면 플로베는 일배움터에서 직업재활을 받는 장애인들의 ‘로망’이다. 시설이 아닌 지역 속에서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배움터에서 운영하는 ‘플로베아카데미’ 1~6기 교육생들은 이곳에서 일하길 꿈꾸고 있다.

▲ 개업 때부터 함께 일해 온 신아나씨(24)가 고객이 주문한 커피를 내주고 있다.

임 부장은 “플로베의 수익이 늘어나면 교육생들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플로베의 운영 목적은 ‘수익 창출’이 아닌 ‘일자리 창출’로, 직원 월급과 운영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은 곧 또 다른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자본’이 될 수 있다.

▲ 플로베 곳곳에는 꽃이 놓여있다. 일배움터에서 재배한 꽃을 이곳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임 부장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2호점을 낼 생각”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2호점을 추진하게 됐을 때 1호점때와 마찬가지로 도청과 도민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지난 1년간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 중에는 소통이 어려워 화를 내는 사람도,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카페의 설립취지를 설명하고 ‘조금 더디더라도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기다려줬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곧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어도 매일 카페에 들러 30분씩 머물다가는 ‘단골’도 생겼다. 그는 이곳에 와서 ‘힐링’을 받는다고 말한다.

▲ 열심히 근무중인 승호씨.
하루 5시간씩이라고는 하지만 주 6일을 출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승호씨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히려 즐겁다’고 답했다. 다만 ‘일을 하면서 동시에 카페를 나서는 손님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해야하는 게 여전히 힘들다’고 살짝 고백했다.

아직 어려운 점도 많고 실수도 잦지만 이들은 모두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일터에서 행복하게 근무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까? 소중한 것들을 당연스럽게만 여기면서 살게 되는 요즘, 플로베에 들러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 플로베에 가면 여느 카페보다 더 진한 꽃과 커피향을 맡을 수 있다.

▲ 플로베에서 이용하고 있는 컵과 식기, 컵받침들은 모두 일배움처에서 교육생들이 손수 만든 것이다. 설거지 후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는 찻잔들.

▲ 일배움터 근로장애인들이 만든 팔찌를 판매하기도 한다.
▲ 플로베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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