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제주판 3김시대’ 청산법

[제주도민일보 오석준 기자] 그제 오후 제주시 연동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신구범 전 제주지사의 자전적 회고록 '삼다수 하르방, 길을 묻다' 출판기념회에 줄잡아 1000여명에 가까운 분들이 참석했다지요.

신 전 지사와 가까운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김태환 전 지사와 김방훈 제주시장,김경택 전 JDC이사장에 민주당 김우남 국회의원과 고희범 제주도당 위원장 등 내년 지방선거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도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신·김 두분 전 지사의 측근으로 불리는 분들도 총출동하다 보니 이른바 ‘반 우근민 연대’ 결성식이라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듯 합니다.

개인적으로,관선지사를 거쳐 1기 민선 지사를 하시면서 제주의 비전을 세우고 삼다수 시판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건립 등 먹고살아갈 길을 강단있게 열어나가셨고,순탄치않은 삶속에서도 제주의 미래를 고민하시는 신 전 지사에 대한 존경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그럼에도,염려되는 부분들을 굳이 들추어냄은 26년차 ‘글쟁이’의 어쩔수 없는 ‘체질’로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우근민 지사의 2010년 7월1일 제주도지사 취임식.

‘제로섬’ 사회…치유되지 않는 생채기

이날 출판기념회는 신 전 지사와 우근민 지사가 치른 ‘삼세판의 결전’은 진행형이고,두분은 여전히 대척점에 서 있음이 현실임을 보여줍니다.“이시간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완성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모든 세력과 함께 하겠다”는 신 전 지사의 얘기에서 ‘반 우근민 전선’의 그림이 그려지는 까닭이지요.

내년 도지사 선거에 우 지사의 출마를 전제로 하고,신 전 지사가 굳이 후보로 나서지 않더라도 ‘킹 메이커’로 대리전을 치른다면 도민사회가 어찌될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턱 막혀옵니다.

언젠가 이 란에서 말씀드렸듯이,두 지사가 원치도 의도하지도 않았다고 믿지만,‘삼세판의 결전’을 치르면서 도민사회에서 벌어진 줄서기와 줄세우기,편가름의 생채기는 여전히 남아있고,1차적인 책임이 두 지사에게 있음은 부인할수 없겠지요.선거때마다 공직사회가 요동치는 것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오로지 도민만을 바라보며 일과 능력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공복(公僕)이 우대받는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입니다. 도지사 선거에 ‘올 인’해서 승자가 독식하는 ‘제로 섬’ 사회는 공무원에서부터 ‘주류’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쏠려다니는 ‘유력인사’며 기업인·학자들,지역유지들에 이르기까지 ‘아군이 아니면 적군’으로 나뉘어 벌이는 피튀기는 전장판으로 달려가게 합니다.

2002년 지방선거 이후 사상 초유라는 전·현직지사 동시 기소와 우 지사의 중도하차,2006년 선거에선 공무원 선거개입 문제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가 증거수집에 대한 판례 변경으로 운좋게 살아난 김태환 지사가 ‘알수 없는 ?’ 이유로 2010년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도 도지사에 ‘올 인’하는 제주사회의 자화상입니다.

2010년 선거때는 ‘돈 질’ 때문에 쫓겨난 후보를 여당이 지지하고,다시 불거진 성추행 논란으로 민주당에서 ‘퇴출’된 우 지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는 웃지못할 코미디판이 벌어졌지요. 그리고 6년만에 ‘컴백’했던 우 지사는 내년 선거에도 출마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신 전 지사는 도민사회의 다른 축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현직의 책임이 무거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 지난 10일 열린 신구범 전 지사의 삼다수하르방, 길을 묻다’ 출판 기념행사.

마지막 봉사 약속 지키고 내려놓을 때

우 지사는 민선 5기 취임식때 제주가 직면한 사회통합·경제성장·재정·미래비전 4대 위기를 극복하고 도민들이 행복한 제주를 만드는데 헌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제주는 어떤 모습입니까.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동북아 교류협력의 중심 국제자유도시이자 세계 평화의 섬,모두가 고루 잘사는 복지공동체 제주특별자치도의 꿈이 해군기지라는 덫에 갇혀버렸지요. 주민들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놓고,평화·인권·환경의 가치와 제주도지방정부·도민들의 자존심이 내동댕이쳐지고,무지막지한 공권력에 강정에서 제2의 4·3을 마주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요.

아무리 치장을 해도,줄잡아 300억원이 넘는 혈세와 아이들의 코묻은 돈을 비롯한 투표성금을 쏟아부은 7대경관은 정체모를 뉴세븐원더스재단 이사장이 설립한 영리회사가 벌인 돈벌이 캠페인에 놀아난 것이라는게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오로지 7대경관 덕분이라고 열을 내는 모습에선 측은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고는 ‘강정 때문에 스타일 다 구겼더라,중앙정부가 정이 빡 떨어졌다’,‘제주 이미지가 나빠지니까 제주포럼에 강정사람들 오지 말라고 해라’ 거나 ‘시민사회단체들의 감사청구와 고발 때문에 정부가 고품격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을 유보했다’는 개념없는 ‘어록’을 쏟아냈지요.

여기에 ‘4·3 폭도’ 발언과 행정체제 개편 지연을 ‘객관성과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도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도의회 탓으로 돌리는 지경에 이르면 ‘답’이 안나오는 수준에 이릅니다.더욱이 2010년 지방선거 공보물에도 명시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지방자치법이 아닌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의한 기초자치단체라며 행정시장 직선제를 밀어붙이며 제대로된 기초자치단체를 요구하는 도민사회와 정면대결을 벌이는 형국입니다.

기억하기에 우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때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했습니다.이쯤하면 보여줄 것도 다 보여주지 않았는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도민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온당하겠지요.

컴백한 우근민 도정 3년은 철이 지난 버전으로는 제주의 미래에 대한 그림도,시민사회와의 협치를 통한 참여 민주주의와 실질적인 주민자치의 가치도 담아내기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이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미몽에서 벗어나 다음 사람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기를 이 시대가 요구한다는 뜻이지요.

민주시민사회가 성숙할수록 ‘주군정치’의 설자리는 없어지고,제대로 된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가치를 공유하며 도민사회 공동체를 꾸려내는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특별자치도 제주 역시 새로운 비전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고,도민들 스스로 가꿔 나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우 지사가 도민들과의 약속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신구범·김태환 전 지사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굳이 내년 지방선거에 나서야 할 명분도,이유도 없겠지요.세분의 전 지사가 제주의 원로로서 경험과 경륜을 후임 도정과 도민사회와 함께 나누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어찌 저 혼자만의 바람이겠습니까.

이제 우 지사 한 분만 내려놓으시면 됩니다.1995년 민선시대 개막이후 18년간 이어져온 ‘제주판 3김 시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우리가 사는 이 땅 제주를 화합과 상생의 공동체로 가꾸는 디딤돌을 놓으려면 말입니다.스스로 내려놓지 못한다면,도민들이 나서서 내려놓게 할 수밖에 없겠지만,우근민 대 반 우근민 전선에서 벌어질 갈등과 분열의 파열음이 너무도 걱정스러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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