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것 지키는 강기춘씨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바느질 
우아한 곡선·색 매료돼 30년째 한길 
“한복 입는 날 따로 지정했으면···”

 

9일 찾은 제주시내 한복 전문점. 매장 한켠에 마련된 작업실에서는 한 여인이 돋보기 안경을 쓴채 재봉 작업 중이다. 강기춘씨(61·여). 30여년째 한국 고유의 멋을 지켜오고 있다.

어쩌면 강씨와 한복은 필연이었다. 4·3때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강씨의 어머니는 생계를 잇기 위해 옷 수선점을 꾸렸다. 마을 사람들이 헤진 옷을 갖고 오면 어머니는 바늘질 몇번으로 뚝딱 고쳐냈다.

강씨는 실을 감으며 어머니 곁을 지켰고 곁눈질로 옷은 어떻게 만드는지, 바느질은 또 어떻게 하는 지 등을 배웠다.

“당시에는 여자가 바느질을 하면 팔자가 사납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걸었던 길만은 제가 밟지 않았으면 했죠. 하지만 보고 배운 게 ‘옷’ 이였는데 저를 떼어놓을 수 있나요. 천직이죠”
26살때 결혼을 했다. 남편이 서울로 발령되는 바람에 제주여인이 뭍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씨만의 가게를 냈다. 한복점이었다.

“한복이 끌렸어요. 곡선이 아름답고 색이 참 이뻐요. 그리고 저는 옛날 어른들이 눈짐작으로 옷을 만드는 방식을 탈피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한복 학원에 다니면서 정식으로 공부를 했죠”

10년전 강씨는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한복점을 차렸다. 강씨의 솜씨는 정평이 나있다.

지난 2003년에는 100여명이 겨루는 세계한복페스티벌 대회에 파란색의 한복을 들고 나와 입선까지 했다. 당시 입선에 당선된 사람 중 제주출신은 강씨가 유일했다. 강씨는 “심사위원들이 좀 튄다고 느꼈나보죠”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60.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재봉 일을 하기엔 버거운 나이다. 게다가 강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 일에 미쳤기 때문에. “어쩔때는 미친듯이 일해요. 잠도 안자고 꼬박 작업을 하죠. 재밌어요. 나이를 먹었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한복을 입고 밖에 나서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 강씨는 그게 너무 아쉽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것’을 더 부끄러워 하는 현실이 못 마땅하다.

“한복은 ‘한번 입고 마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에요. 왜 굳이 명절에만 한복을 입어야 하죠. 우리 것이 잖아요. 아예 한복 입는 날을 따로 정하는 것 어떨까요?”

갑자기 그녀가 입은 한복이 눈에 들어왔다. 눈썹처럼 우아한 곡선이 강씨의 웃음과 꼭 빼닮았다. 한복이 이리도 예뻤을까. 

 

2. 제빵왕 김재석씨

그저 빵이 좋아 만들기 시작했고
자신이 만든 빵 맛있다는 말에 행복느껴
이른 아침부터 빵을 굽는다

 

아침 6시 김재석씨(37)의 하루가 시작된다. 밀가루 반죽은 물론 단팥과 생크림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가게 가득 빵 굽는 냄새가 가득찬다.

그는 15년 넘게 꾸준히 빵을 굽고 있다.

그저 빵이 좋아 시작한 일이다. 제빵학원에 다니던 그가 어느새 제과점까지 운영하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면서 몰래 빵을 먹기도 했던 일도 이젠 다 추억이다. 가게를 연지 10여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아들과 딸까지 얻어 부러울 것이 없다.

부인도 김씨의 권유로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부부가 합심해 만든 빵은 그만큼 맛이 좋다.

부부가 같이 일을 한다고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많자민 처음부터 그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선생님께 빵을 배운 부인과 자신만의 노하우를 고집하는 김씨,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자주 싸우기도 했다.

지금은 서로 도와가며 같이 새로운 빵을 개발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인은 살짝 투정을 부린다. 부인은 빵 굽는 틈틈이 집에 올라가 집안일을 해야하는데 자신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부인을 위한 마음은 누구 못지 않다.

그리고 인정하는 한가지. “사실 부인이 저보다 더 빵을 잘 만들어요. 맛도 더 좋고 모양도 이쁘거든요. 하지만 고로켓만큼은 제가 더 잘만들어요”

한 곳에서 10년 넘게 장사하다보니 단골손님도 제법 늘었다. 갓 구운 빵을 사러 오는 이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따뜻한 식빵을 아침식사로 먹기 위해 일부러 오는 이들을 보면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 빵을 굽게 된다.

“케잌도 방금 만든 따뜻한 걸로 사려는 사람도 있어요.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매일 아침 빵을 굽는데 소홀할 수 없죠”

빵 하나를 구우려면 200도가 넘는 오븐에 넣어야 하는데 오븐 3~4개를 동시에 틀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그렇게 땀에 온몸이 젖었고 일할때만큼은 정말 재미있단다.

“요즘 프렌차이즈 빵집이나 마트에서 값 싸고 맛 좋은 빵을 많이 팔아 조금 힘들지만, 단골 손님들이 이 집 빵이 제일 맛있다며 찾아올 때가 가장 행복해요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만든 빵이 최고라고 할 때마다 느끼는 그 감정은 아무도 모를거 에요”

김씨가 힘이 닿는데까지 빵을 구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