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 19일 오후 열린 제305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답변하는 우근민 지사.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닐수 없습니다.명색이 특별자치도라는 제주도의 지사가 잘된 것은 내탓이고 안된 것은 남의 탓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게다가 기자들 모아놓고 밥을 먹다 한 것으로 보도된 얘기를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거짓말쟁이가 될 처지에 몰렸습니다.

지난 2002년 전국을 뒤흔든 여성단체장 성추행 논란속에 민선지사 재선에 성공했던 우근민 지사가 선거때 TV토론에서 한 발언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2년만에 도지사직을 내려놓았던 일은 기억하시겠지요.2010년 선거때 성추행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민주당에서 쫓겨나다시피했던 우 지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6년만에 ‘컴백’할수 있었던 것은 도민들의 기대가 컷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기 1년을 남긴 지금 우 지사는 도민들의 기대치에 얼마나 화답했을까요. “마을주민과 제주도민,국방부 모두가 수긍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반목과 대립을 합리적으로 조정,도민 대통합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던 강정 해군기지 문제는 어떻습니까. 무지막지한 공권력에 무너진 제주도와 도민들의 자존,불법·편법적인 공사를 저지하려고 맞서다 연행되고 구속되고 ‘벌금폭탄’을 맞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의 애환과 눈물을 한번쯤 생각은 해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제주가 직면한 4대 위기(경제성장의 위기,사회통합의 위기,재정의 위기,미래비전의 위기)를 돌파하고 미래의 새 틀을 짜는 일에 헌신하겠다던 우 지사의 다짐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 커 보입니다. 그 이유를 도지사가 내탓이 아니고 남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저 숨이 턱 막히는 것이지요.

 

시민사회단체 때문에 일 못했다?

지난 18~19일 제주도의회 도정질문때 우 지사의 답변 코드는 ‘네탓’입니다.우 지사는 수백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효과가 미미하고 후속조치도 없다는 추궁에 시민사회단체들의 감사청구와 고발 때문에 일을 못했고,정부도 고품격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을 유보했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국내외 관광객 증가가 오로지 7대경관 선정 덕분이라고 핏대를 올렸습니다.생물권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트리플크라운’ 달성과 제주올레 열풍,중국인들의 해외여행 급증 등 전반적인 요인들은 쏙 빼놓고 말이지요.아무리 치장을 해도,줄잡아 300억원이 넘는 혈세와 아이들의 코묻은 돈을 비롯한 투표성금을 쏟아부은 7대경관은 정체모를 뉴세븐원더스재단 이사장이 설립한 영리회사가 벌인 돈벌이 캠페인에 놀아난 것이라는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 지사는 자신의 핵심공약인 제주형 기초단체 부활을 위한 행정체제 개편을 내년 지방선거때 적용하는게 사실상 물건너간 이유도 도의회 탓이라고 했습니다.지난해 행정체제개편위원회 시한 연장을 위한 조례 개정때 행정시장 직선제와 기초자치단체 부활 2개 대안에 ‘행정시 권한 강화 후 개편’을 포함해 객관성과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도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감안해 추진하라는 부대조건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것이지요.

제주특별자치도 5단계 제도개선 과제에 행정체제 개편문제를 빼놓고 "도의회 부대조건이 없었다면 시장직선제를 추진했을 것이다.의회가 부대조건을 풀어주면 추진하겠다”는건 변명밖에 안됩니다.

지난해 제주사회를 흔들었던 도내 판매용 삼다수 도외 무단반출에 대해 말로는 사과하면서도 책임 문제는 회피하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없어보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지난해 삼다수 도내 판매물량이 4만2000t에서 2배 넘게 증량이 이뤄졌는데 제주도와 도개발공사가 도외 무단반출을 몰랐다,그리고 "대리점에서 불법반출 한것은 찾아내지 못했고 사간 사람이 재판매한 것이다.재판매업자가 장사하는 걸 어떻게 막느냐"고 했지요.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과 도내 대리점들을 싸고도는 이유는 미루어 짐작이 가지만,지나던 소가 웃다가 자빠질 얘기를 듣자니 헛웃음만 나옵니다.

멕시코 출신 세계적 건축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문제에 대해 반대측을 겨냥한 발언으로 도의원에게 ‘자질’을 의심하는 ‘돌직구’를 맞고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대목도 갑갑합니다.

이선화 의원은 19일 도정질문에서 "의회의 기능을 이해 못하고 마치 의원들이 무슨 로비에 놀아나는 것처럼 발언한 집행부의 수장이 있다면 지도자로서 자질이 심히 의심스럽다"며 우 지사를 정면으로 겨냥했지요.‘양심껏 로비나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우 지사 발언은 도청 출입기자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왔다고 보도가 됐는데,당사자가 부인하니 기자들이 없는 일을 ‘작문’한 셈이 되고 졸지에 ‘관리대상’으로 전락하게 된것입니다.

 

이런 도지사 어디 없나요?

언젠가 이 란에서 ‘안철수 현상’은 ‘불통 정부’를 반면교사로 한 성찰적 시민사회의 새로운 시대,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라는 변변치못한 소견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철이 지난 ‘버전’으로는 보다 폭넓은 참여민주주의의 가치,기회와 경쟁의 공정성 등 시민사회의 욕구를 담아낼수 없음이 역사의 교훈이라는 얘기와 함께 말이지요.

성숙한 민주시민사회일수록 ‘영웅적 리더’의 설자리는 좁아지고,존재 이유도 없습니다.눈과 귀를 활짝 열고 당면한 문제와 미래에 대해 진정으로 소통하며 바람직한 가치를 공유하고 일구는 도민사회 공동체를 꾸려내는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한게 아닌지요.

나는 옳고 당신들은 틀리다는 그릇된 우월주의와 오만,권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날선 비판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도지사 어디 없을까요.비뚤어지고 잘못된 것은 ‘내탓’이니 책임을 지고 잘되는 것은 ‘네탓’이니 상을 주고 힘을 보태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꿈꾸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특별자치도 지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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