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간 약초 직접 캐고 팔아
내가 먼저 먹어보고 효능 봐야
저승사자 올 때까지 이 일 할 것

오일시장 한켠에 펼쳐져 있는 한약재들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약재 이름이 써 있다. 으름덩굴이 아니라 ‘우뉼률’처럼 대부분 제주어로 표기돼 있다. 글자를 떠듬떠듬 읽는다는 양남희씨(83·여·아라2동)가 자식들에게 배워 직접 쓴 이름표다.

양씨는 “우뉼률은 소변이 잘 안 나오는 사람들이 먹으면 방광에 좋고 질경이랑 같이 먹으면 더 좋아”라며 이름표에 적힌 한약재를 일일이 설명한다. ‘이 약재는···저 약재는···’ 한약재 박사가 따로 없다.

양씨는 약재상이다. 약재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 그도 처음부터 약재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다. 30세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그해 무렵 한약재상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를 약재상의 길로 이끌었다.

“내가 딱 30세때였어. 칠성로에서 지게에 한약재들을 짊어지고 파는 아저씨한테서 신경통에 좋다는 약을 하나 샀어. 우리 어머니가 곡갱이로 어깨를 두드릴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그걸 먹고 싹 나아서 신기하더라고. 그래서 아저씨한테 물었어. 무슨 약초로 만들었느냐고. 삼지구엽초라고 하더라고. 이게 웬걸. 집 근처에 똑같이 생긴 풀들이 널렸는데 여태 몰랐으니.(웃음) 풀이 약초인줄 알고부터 캐다가 장에 팔기 시작했지”

이후 그는 ‘어떤 병에는 무슨 약초가 좋다’는 말만 들으면 직접 캐서 달여 먹어보고 시장에도 내다팔았다. 검증이 안된 약초를 달여먹다보니 ‘탈’이 날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이제는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무슨 약재들을 얼만큼씩 넣으면 되는지 책 안보고도 알 수 있단다. 그렇게 50년, 어느새 40여가지나 되는 약재를 파는 어엿한 ‘한약재상’이 됐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한약재상으로 있다보니 그와 연을 맺은 손님도 많다. 드문드문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자신이 지어준 약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손님들의 ‘인사’를 들을때가 그는 가장 행복하다. “언제였더라. 자꾸 유산이 돼서 아이가 없는 부부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어. 내가 일러준대로 약을 지어먹고는 건강한 아들을 낳게 됐다며 고맙다고 인사까지 왔었지.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지”

베테랑 한약재상인 양씨 때문에 그의 가족들 역시 병원 문턱 한번 드나들지 않는다. 육남매와 손자들을 다 합쳐 30여명이 넘는 식솔들이 그가 다려준 약이면 잔병치레 한번 없이 한 해를 보낸다고.

그런 그에게도 요즘 고민이 생겼다. 양씨 나이 83. 자식들은 “이제 일을 그만하시라”며 그를 말린다. 부모를 위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50여년 해온 일을 그는 아직 놓을 생각이 없다.
“점쟁이가 날더러 사주팔자가 남의 목숨 구하는 거라고 하대. 그 말 마냥 나는 약을 팔아서 남들 병을 고
쳐주며 사는 게 내 팔자려니 하고 살아왔어. 저승사자가 오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 병 고쳐주면서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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