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사람> 교사 박차고 된장 아줌마로 팔 걷어부친 김성옥씨

살핌으로 숙성되고 있다. 


안주인 김성옥씨. 그는 세계적 된장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된장 쿠킹 스튜디오를 건립하고 있다.        


               ㈜고내촌 안주인, 명품된장 만들다 ‘된장 쿠킹 스튜디오’ 건립 까지  

              “음식 맛 기억되면 성공한 관광. 그래서 음식은 지역성 짙게 밴 문화”


고내봉의 소나무가 키운 된장

“음식의 맛이 기억된다면 그것은 성공한 관광입니다. 그럴려면 음식은 그 지역의 재료로 맛을 내야 하고, 종류 또한 다양해야 겠죠. 그래서 음식은 문화입니다. 그것도 지역성이 짙게 밴”

3일 고내봉 끝자락에서 김성옥씨(62)를 만났다. 김씨는 명품 된장을 지향하는 ㈜고내촌의 안주인이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이 날 오후에도 김씨는 신이 난듯 6000㎡ 규모의 장독밭을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29년간 중학교 가정 교사로 근무했어요. 학교에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된장이었죠. 제주만의 맛을 가진 된장이 없다는 것 말이에요. 저장식품은 된장말고도 김치나 젓갈 등이 더 있지만 이런 것들은 육지에서나 제주에서나 맛의 차이를 둘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된장은 다르죠. 메주를 띄워서 발효를 시켜야 하니까요”

메주는 영상의 기온에서만 균이 제대로 나온다. 겨울철 영하로 내려가는 육지에서는 영상권에 머무는 제주에 비해 숙성여건이 좋지 않다. 자연히 맛과 영양이 제주산보다 나을리 없다. 더구나 황토흙이 나오는 고내봉이야 말로 메주를 띄우는 데 최적지라고 말한다. 주장의 근거는 남편이 제주토양을 분석해 쓴 박사학위 논문이다.

“메주에 균이 잘 자라려면 습도와 기온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보세요. 제주는 작지만 동서남북 곳곳의 자연상태가 달라요. 표선과 성읍은 모래밭이라 구좌와 당근이 잘 자라고요. 고산은 자갈밭이라 녹차와 고구마가 자라는 데 적합하지요. 성산과 서귀포는 습도가 무척 높고요. 그런데 이 곳 고내봉은 제주이면서도 중산간이라 습도가 낮고 나무가 많아 균이 자라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한국에서는 된장하면 순창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은 내실없는 유명세란다. “순창은 내륙지방이라 별다른 일거리가 없어요. 그래서 지자체에서 고추장 된장을 집중 육성했고 지금 보세요. 순창 고추장이라고 하지만 그저 대기업이 진출해서 그 고장의 이름만 붙여 파는 정도죠. 결코 명품이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김씨네 된장은 뭐가 다를까. “제주에서는 보통 10월에 콩을 수확해 11월초면 메주를 띄우고 상온에서 자연발효시킨 뒤 12월말까지 장을 담급니다. 육지에서는 정월장, 2월장, 3월장이라고 3월까지도 장을 담궈요. 날이 추워 균이 잘 자라지 못하니 12월까지 메주를 띄우고 3월까지도 장을 담그는 겁니다. 맛이 덜할 수 밖에 없어요. 바람, 습도, 흙, 기온.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장맛을 결정하는 데에는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집 된장은 고내봉 소나무가 키웁니다’하고 말하곤 해요”
 

된장으로 제주 기억하게 할 것


지난 2007년 본격 출시한 김씨네 ㈜고내촌 송화된장은 제주도가 인증한 ‘제주마씸’의 브랜드를 달고 도내외 각지로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과 캐나다로 수출길을 열었다. 일본과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으로는 보름전쯤 된장 샘플을 보내둔 상태다. 된장으로만 연중 매출 1억원. 김씨의 꿈은 ‘제주의 된장’이면서 ‘세계속 된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어릴때 보면 물냉국에 생된장을 바로 풀어먹잖아요. 얼마나 시원하고 좋아요. 그런 맛. 그때의 제주를 그리워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짜 제주 된장을 먹게 하고 싶어요” 이러한 꿈을 꾸는 김씨에게 된장은 음식은, 맛이고 문화다.

한쪽에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다음달 완공을 목표로 2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된장 쿠킹 스튜디오’. 김씨의 된장을 향한 욕심과 꿈이 집약된 곳이다. “1층은 체험장이에요. 된장 레시피를 일어와 영어로 번역한 모니터를 틀어두고 언제라도 누구라도 이곳에서 된장을 만들수 있게 할 거에요. 한쪽에는 다도를 만들고요. 한쪽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재배한 채소를 모조리 가져와 판매하는 농산물매대를 만들겁니다. 요 옆으로 올레코스(15)가 지나니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거라고 봐요. 그리고 소규모 세미나가 이뤄질 수 있도록 2층은 회의실과 숙박시설로 짤 계획입니다”

설명을 이어가는 김씨의 얼굴이 호김심을 품은 어린아이마냥 들뜨고 열의에 차 보였다. “얼마전 육지에서 지인들이 오셨길래 보리밥과 콩잎, 멸치젓갈, 된장으로 식사를 대접해드렸죠. 옆에 있던 제주 분은 음식이 초라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지만 웬걸요. 그분들은 제주의 멸젓과 손된장, 약간은 비릿한 콩잎의 찰떡궁합에 아주 극찬을 하셨어요. 너무나 인상깊은 맛이라고요. 경치는 잊어도 맛은 잊지 못하는 게 사람이죠. 맛을 기억하고 돌아간 사람은 다시 또 돌아옵니다. 그래서 음식은 관광의 핵심이고, 그 음식의 핵심을 제가 된장으로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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