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주축 ‘3Frame’ ‘예술공간 오이’…원도심 ‘입성’

[제주도민일보 문정임 기자] 1970~1980년대 문화일번지로 불야성을 이뤘던 원도심으로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초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소장 강문규)가 성바오로 서원 인근 건물에 입주한 데 이어, 갤러리 아트스페이스씨와 ㈔제주전통문화연구소(소장 박경훈)가 각각 중앙로(나이키 매장 3층)와 자양삼계탕(삼도2동주민센터 옆) 건물로 둥지를 옮겼다. 이어 최근에는 영상업체 ‘3Frame’이 이전을 마무리하고, 오는 8월 스튜디오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3Frame이 들어선 자리가 바로 제주지역 7080세대들의 아지트 ‘소라다방’ 자리다.

중앙성당을 중심으로 이어진 이 골목은, 1970~80년대 중앙로·칠성로와 더불어 밤낮 북새통을 이루던 대학로였다. 청춘남녀의 데이트가 있고 이념이 싹을 틔우던 장소였다.

이 곳에는 제주중앙성당(1899)이 있었고, 신성여고 (1909년 설립인가, 1916년 폐교후 1946년 광복후 다시 개설)가 있었고, 제주MBC의 전신 남양방송(현 마트21 건물, 1968)이 있었다. 인근 인문사회과학 서점 사인자와 대동서점·학사주점 등은 이념과 예술·미래를 논하는 청년들의 주요 아지트였다.

특히 이 골목 2층에 자리했던 소라다방(현 마트21 건물 맞은 편)은 문화공간이 적었던 당시, 음악감상의 장소이자 담소의 공간이면서 전시가 이뤄지고 유행이 가장 먼저 감지되던 예술문화의 집결지였다. 

하지만 영광의 시기가 끝나고 ‘보세골목’으로 시민들의 마지막 발길을 부여잡던 이 곳은 2000년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공동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원도심 복귀는 이처럼 공동화 회복 외에도 옛 문화거점의 명성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3Frame 등 젊은 30대 문화인들의 이주는 새로운 세대의 원도심 정착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보다 조금 앞서서는 제주대학교 연극 동아리 출신의 청년들이 ‘예술공간 오이’란 간판으로 먼저 자리를 잡았다. 20~30대 청년 세 명이 주인장인 예술공간 오이는 연극을 필두로 모였지만 자유로운 문화예술을 표방하는 모임으로 알려져 이 일대 젊은 문화적 감수성 충전에 기대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 원도심으로 갤러리를 옮긴 아트스페이스씨 관장 안혜경씨는 올초 본보에 게재한 칼럼(‘흔적-구도심 살리기의 기본’)에서 ‘꼬질꼬질 옛 건물로 찾아들며 비애감도 생길 법 하건만 난 요즘 참 즐겁다. 어릴적 11년간 살았던 그 공간 곳곳을 나의 물건과 6년간 진행했던 행사 자료들로 채우며 옛 기억을 불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세워두고 건물로 향해 걸어가며 내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옛 추억들을 건져 올린다.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을 만나면 까치발로 안을 기웃거리고 폭 좁은 옛 골목에선 예쁘단 탄성이 절로 터진다. 할머니와 안·밖거리로 함께 살았던 집은 넓혀진 길과 낯선 건물로 흔적도 없이 지워졌지만 주변에 남은 옛 건물들로 그 위치를 짐작해본다. 그러면 그 시절의 장면이 흐릿한 흑백영화처럼 눈 앞에서 펼쳐진다’고 적고 있다. 쾌적한 새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끈끈한 추억의 맛이 살아있다는 의미다.

한짓골의 시끌벅적함을 기억하는 40~50대에 이어 30대 문화예술인들의 이주가 이어지고 있다. 원도심의 부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조용히 뒤따르고 있다.  

▲ 1960년대 관덕로의 모습. 2층 건물이 고작이다. 「삼도2동지」에서 발췌.
▲ 1960년대 칠성로의 모습. 칠성로는 상가와 문화시설의 밀집지로,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칠성로의 여러 다방을 중심으로 교류와 소통을 이어나갔다. 계용묵은 제주에 머무르는 3년5개월 동안 칠성로 동백다방(현, 타미힐피거 매장)을 주 활동지로 두었다. 동백다방이 있던 터에는 지난 1998년 ㈔한국문인협회와 SBS문화재단이 세운 표석이 남아 그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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