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패거리 자치’의 비극

[편집국장의 편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제주도를 세계에 널리 알린 세계 7대 자연경관 캠페인이야말로 제주 역사에 남으리라 확신한다”

지난 26일 물러난 김부일 환경·경제부지사의 이임사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제주도는 관광 비수기가 사라지고 연중 성수기로 바뀌고 있다. 도민이 행복해지고 있다”고요.
 
이런 그의 인식에 동의하는 도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맹목적인 7대경관 투표 과정에서 빚어진 온갖 문제와 의혹들로 감사원 감사가 이뤄지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우근민 도지사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데 대한 책임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자화자찬(自畵自讚)만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것을 오로지 7대경관 덕분이라고 말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법도 이쯤되면 중병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
어떤 이유든, 공신력도 실체도 의심스러운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개인적으로 만든 사기업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NOWC)의 돈벌이 캠페인에 놀아나 공무원 투표 행정전화비를 비롯해 300억원이 훨씬 넘는 도민들의 혈세를 탕진한 7대경관의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7년 NOWC가 벌였던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지역 관광객이 몇% 늘었다는 주장을 토대로 추산한 연간 6300억~1조3000억원에 이르는 경제파급효과를 내세워 공무원 1명이 하루에 최고 2381통까지 두드려대게 한 무제한 중복 전화투표의 과학성·객관성 문제 등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한 비판에 귀를 닫고 맹목적으로 ‘올 인’한 결과지요.
 
시민단체들이 우지사를 고발한 죄목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업무상횡령 혐의라고 하지요. 사인(私人)이 주관하는 상업적 성격의 7대경관 선정이벤트에 공무원들에게 행정전화로 투표하게 해 210억원 이상이 요금을 발생케 했고, 도의회가 추경예산 심의에서 행정전화요금을 삭감했는데도 예비비에서 81억원을 전용해 납부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도민의 혈세로 7대경관 타이틀을 매수한 것이라는 얘기지요.
 
시민단체들은 기부금 관련 법률에 따라 신고되지 않은 계좌로 56억7000만원의 전화투표 기탁금을 모금하고, 이가운데 10억원 가까이를 행정전화요금으로 대납한 부분도 고발했습니다.
 
여기에다 사실상 국내전화로 밝혀진 투표전화에서부터 NOWC와 7대경관 공식후원기관인 제주관광공사, KT 등의 수익분배 내역, 도의회 결산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전용예산을 비롯해 도와 제주관광공사, 범국민·범도민추진위원회 등의 홍보비·추진사업비를 비롯한 30억원이 넘는 경상예산 집행 내역, 투표기탁 캠페인을 벌인 이른바 지역 ‘유력언론사’들과의 ‘짬짜미’ 에 대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지요.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고 국회가 만장일치로 제주 선정 지지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가적 아젠다로 밀어붙인 7대경관 선정이 고작 사기업의 돈벌이 캠페인에 불과했음이 밝혀져 정부가 발을 빼는 형국에 이르렀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마당에 7대경관을 주도했던 사람이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제주 역사에 남을 것’이라 자랑하는 ‘개념이 없는’ 행태에 숨이 턱 막힐 노릇이지요.
 
바통을 넘겨받은 부지사도 걱정입니다. 도민사회와의 소통과 제주가 먹고살아가는 문제들을 챙겨야할 환경·경제부지사 임용이 ‘무늬만’ 전국공모일뿐 ‘선거 보은인사의 완결판’으로 귀결됐으니 말입니다.
 
도의회 인사청문에서 측근·보은인사 관행, 탈세 및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의혹, 기부·봉사활동 등 나눔정신 소홀, 소관업무에 대한 전문성 부재 등의 문제가 제기됐지만 대안이 없는 탓에 ‘적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데서 우 도정의 인사에 대한 인식과 ‘인재 풀’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기야 도정을 감시해야 할 도감사위원장 자리에 우 지사가 ‘멘토’라 칭하는 분을 앉히려 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김선우 신임 환경·경제부지사는 27일 취임사에서 도의회와 도민사회와의 소통, 환경·경제 등 소관 업무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노라 다짐했지만, 밑천이 부족한 생각만으로 글쎄요. 전임 부지사처럼 국제적인 망신을 사는 엉뚱한 일이나 벌이지 않았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패거리 자치’의 비극
도지사 선거에 ‘올 인’해서 승자가 독식하는 ‘제로 섬’사회는 제주의 비극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방자치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제왕적 도정’과 시장·지역토호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후원·수혜 구조속에 도지사의 독주와 고위 공무원에서부터 ‘유력인사’, 기업인·학자들, ‘유력언론사’ 등 기득권의 득세·횡포가 고착·강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동북아 교류협력의 중심 국제자유도시이자 세계 평화의 섬, 복지공동체 제주의 꿈이 해군기지라는 덫에 갇혀 평화·인권·환경의 가치와 도민들의 자존심이 내댕이쳐진 참담한 현실도 끼리끼리 다해먹는 ‘패거리 자치’의 산물입니다.
 
제주사회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의식과 행동, 제주의 시대정신을 도출하고 추동할 소통의 리더십 등 탈출로마저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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