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동섭/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신(神)들의 가호(加護) 덕분이었는지 심한 가뭄으로 애타하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얼마 전 일본에 많은 피해를 준 태풍의 영향으로 우리 지방은 해갈(解渴)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논바닥이 갈라지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등 하루를 달리하는 가뭄의 피해는 칠십 평생을 산 촌로(村老)들도 처음 겪은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그 심각함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저녁부터 그동안 비구름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대기(大氣)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장마 구름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대지를 뜨겁게 달궜던 가뭄도 물러가게 됐고, 예년보다 늦었지만 장맛비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많이 힘들어했던 대지는 물론, 그동안 많이 애타하며 목말라 하셨던 그 곳의 여러분들에게도 해갈의 기쁨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여름철 가장 뜨거울때 ‘만병통치’

돌이켜보면 우리 선인들은 바쁜 농사일과 잡다한 집안일을 하다보면 더위에 지치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 불리 먹을 수도 없었던 것이 우리 어머님들이 살던 때 누구나가 겪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아프지 않는 곳이 없고 마디마디 쑤시지 않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잠시라도 쉴 수 없었던 것이 밭농사가 주를 이루었던 우리 제주의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대로 갈 수 없었던 우리 선인들은 조밭의 검질을 매어두고 난 백중 무렵이 되면 온몸에 불이 난다고 합니다. 이 때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 산속 폭포수나 싸늘한 샘이 솟아나는 바닷가로 가서 산물로 몸을 식혀 줘야 했는데, 이를 물맞이를 가서 하루를 쉬었던 것입니다. 돌아서면 쑥 커 오르는 것이 여름철 ‘검질’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짬을 내지 않으면 도저히 여가를 낼 수 없었으므로 가장 뜨거웠던 이 때를 정하여 물맞이를 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형에는 한라산 쪽에 ‘베염나리’라는 생수가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었고, 바닷가로는 ‘백개’의 모래밭에서 생수가 솟아오르는 곳이 있어 물맞이를 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폭포로 간 사람은 속옷을 입은 채 물을 지쳐 더위를 약간 식힌 다음 떨어지는 폭포 물을 한 동안 맞으면 온몸이 싸늘해서 추운 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늘에 앉아 쉬면서 다른 사람과 교대하면 또 더운 기가 올라오게 되고 다시 들어가 물을 맞는데, 이번에는 머리·어깨·등·가슴으로 온몸에 싸늘한 물을 맞아 온몸이 덜덜 떨리게 된다고 합니다. 백개로 간 사람은 모래를 몸뚱아리가 들어갈 만큼 파서 차가운 물이 솟아올라 가득 차게 되면 그 물 속에 들어가 몸을 담그게 된다고 합니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 몸이 덜덜 떨려온다고 합니다.
또한 한라산 속 해발 900m고지 부근의 성판악 및 어승생악에는 2개의 약수가 있었는데, 상록수가 울창하고 거대한 용암이 탑처럼 솟아있는 곳의 폭포로 잠녀(潛女)들의 질병에 아주 잘 듣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두막이 있어 그곳을 관리하는 분에게 빌어서 이용했다고 합니다. 한 번에 10분 이상 냉수를 맞으면 몸에 해롭다고 하여 이를 고려하면서, 1주일이나 2주일 휴식을 한 뒤 돌아갔다고 합니다.


명월 사람들은 간혹, 어승생까지 가기도 했다지만 주로 ‘산물’에 가서 물을 맞았다고 합니다. 많을 때는 인근 여러 마을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마치 오일시장 같았다고 합니다. 이 날 사탕대죽, 강냉이대죽(옥수수), 복성개(복숭아), 쌀밥을 갖고 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을 맞곤 했는데, 그러면 만병통치(萬病通治)약이 된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또 땀띠가 난 어린이들이 이 때 물을 맞게 되면 땀띠가 들어간다고도 하여 아이들도 데리고 왔었다고 합니다.

힘겨움 함께 나누면 가벼워져

이처럼 제주에서는 백중날 바닷가에서 솟는 샘물이나 산속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몸에 아주 좋다고 하여 산과 바다에서 물맞이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정방폭포 곁에 있는 소정방폭포, 한라산중의 돈네코 계곡에서 백중날에 물맞이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예례의 논짓물, 대왕물, 남원의 건드렛물, 화순의 하강물, 동복의 골금이, 도두의 오레물, 신촌의 큰물, 쇠소각의 고망물·대정의 서린물, 삼양의 큰물, 법환의 막숙물, 별방의 동물, 서홍의 황동산물 등이 그 고장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백중날에 우리 선인들은 물맞이를 다녀오면 몸에 생긴 백가지의 병(病)이 씻은 듯이 낫는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백중’이라고 한다고도 합니다. 


뜨거움에 지친 몸을 찬물로 달랬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처럼, ‘백지장도 맛 들면 낫다’고 했던 우리선인들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서 이를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다른 지방의 깊은 가뭄을 남의 일이라고 모르는 채 하지 않겠습니다. ‘어려움은 나눌수록 엷어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두터워진다’고 합니다. 3년전 엄청난 물난리때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기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몰라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두 손 두 발을 걷어 부치고 달려와 준 내 이웃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그들이 겪는 가뭄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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