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봉수 /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

▲ 강봉수

제주지역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능성적이 전국 1위를 달성했다. 지난 1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은 수능 4개 영역(언어, 수리가, 수리나, 외국어)에서 표준점수와 영역별 수능 1~2등급 분포 비율에서 전국 최고 성적을 거뒀다. 제주 지역의 수능 성적 전국 1위는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 수능생들이 거둔 쾌거를 폄훼할 뜻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면과 그늘도 보자는 것이다. 도교육청은 수능 성과를 선생님들의 열성을 다한 지도와 학생들의 방과 후 자기주도학습의 결과로 돌리면서도 자신들이 펼친 교단지원활동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대학진학지원단을 구성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했고, 고교신입생 예비교실을 운영한 것은 제주교육청만의 특별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열성을 다하는 선생님들의 노고와 도교육청의 지원에 대해서야 마땅히 치하할 일이지만, 수능 성적 전국 1위를 위해 긴 세월을 학습노예로 살아내야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숨길 수 없다.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제도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치열한 경쟁구조 속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주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시험에 멍이 들고, 고입의 문턱에서 성공과 실패의 첫 낙인이 찍힌다. 사실 수능 전국 1위라는 성적도 고입의 문턱을 성공적으로 넘어선 아이들의 몫에 불과하다. 평가원의 자료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표준점수 평균 및 1~2등급 비율 상위 30개 시군구에 각각 ‘제주시’가 3개 영역(언어, 수리나, 외국어)에 포함됐다. 물론 제주시에는 비평준화 일반계고도 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대체로 평준화 일반계고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다닌다. 물론 이 학교 출신이라고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학교 수로만 보아도 수능 전국 1위에 기여한 수능생들은 제주시 동지역의 평준화 일반계고와 과학고, 외국어고 출신의 학생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 학교의 입학전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알고 있다. 과학고나 외국어고는 그들만의 리그에 의해 특별한(?) 아이들만 입학한다. 평준화 일반계고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선발시험(50% 비율을 반영하는 연합고사)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 선발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생 대비 45%정도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보다 치열한 경쟁률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일제고사식 제학력갖추기평가를 옹호하는 것도 이러한 고입제도 때문이고, 제주의 아이들이 수능에서 성적이 좋은 것도 저러한 선발효과에서 출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점은 진학사라는 입시전문업체가 작년에 발표한 일반계 고교종합평가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수능 성적 순위 500개 학교에는 제주시 동지역 평준화일반계고, 서귀여고, 서귀고가 포함돼 있다. 이 업체도 수능성적이 좋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우수학생을 유치한 선발효과에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편, 평가원의 자료는 수능성적 우수학교의 특징으로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 시간이 많은 학교, EBS 수강 시간이 많은 학교, 기숙형 고등학교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진단을 제주에 적용하면, 일반계고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EBS 강좌를 수강하도록 선생님들이 지도감독하고, 방과 후에는 3시간 이상을 자율(?)학습에 매진하도록 독려한 셈이 된다. 그리고 과학고와 외국어고를 비롯해 수능 1~2등급에 들어갈 수 있는 우수한(?) 인재들은 특별히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하는 특혜를 누린다. 또한 평가원의 자료는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학교가 모든 영역에서 표준점수가 높았다고 하는데, 과연 제주의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학습노예로 살아온 삶에 행복했는지 의문이다. OECD조사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학교공부가 전혀 즐겁지 않다고 했다.

이것이 제주의 아이들이 수능 전국 1위를 차지하도록 만든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50%정도의 선택된 학생들을 혹독하게 몰아세운 결과로 얻은 성적에 마냥 기뻐하고 자축만 해야 할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분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전국 1위를 위해 온갖 인내를 감수해온 제주 수능생들의 노고에 늦었지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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