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종 / 문화활동가

▲ 지금종

제주에서 ‘문화이민자’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제주에 살러 내려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독 문화 예술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통계조사나 설문은 없었으니 구체적 데이터로 입증하기란 곤란하지만 체감으로는 확실히 문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한다.

그런데 ‘문화이민자’는 과연 정확한 표현일까? 이러한 표현만으로는 문화예술인이 이주했다는 걸 가리키는지, 문화 활동을 위한 이민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용법으로 짐작컨대, 근래 회자되고 있는 ‘문화이민자’의 경우는 예술 활동을 위해 이주를 하는 일반적인 문화 이주 사례와는 다르다는 측면에서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제주는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역사와 신화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은 줄 수 있을지언정,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고, 예술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문화 활동을 하기에는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이른바 ‘문화이민자’들의 활동의 양과 수준이 눈에 띄게 의미 있다고 할 수준도 아직은 아니다.

따라서 제주로의 ‘문화이주’가 활발한 근본적 원인은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적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적 가치의 확산, 무한경쟁 사회에서의 탈주, 느린 삶과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 추구 등 ‘삶의 방식’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 내재한 여러 모순들이 극에 달하고 있고, 그 폐해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대안적 삶의 방식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런 흐름이 문화·예술인들의 기질과 철학에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제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물어보더라도 자연·주거 등 환경적 요인들을 언급하거나, ‘그냥 좋아서’ 등 싱거운 대답으로 돌아오지, 문화 활동 계획을 거창하게 풀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설혹 문화 활동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단 정도로 활용하는 정도이고, 오히려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현재 제주도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면 이주민들이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들 업종에 대한 도시민들의 로망도 있을 것이고, 직장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제주는 일자리가 부족한데다 임금이 낮은 편이다. 미리 직장을 구해 놓거나, 농업 등 다른 일을 하지 않는 한 와서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의 방식’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이에 따라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 일도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생각보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일인데다 수익을 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문화이민자’들이 제주사회에 일정한 자극을 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기존의 고루한 문화적 감성과는 구별되는 튀는 아이디어와 아이템으로 접근하는 다양한 생활문화 공간들이 등장함으로써 관광인프라가 확장되는 부분들이 있고, ‘낯설게 보기’를 통한 제주문화의 재해석, 콘텐츠의 다양성 증대, 소통 범위의 확장 등이 그들이 일으킨 효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문화이민자’가 가져온 단기적인 가시적 효과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들이 ‘문화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제주에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 관련 창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선주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주문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배문화다. 추사 등 제주에 유배 온 많은 선현들이 남긴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들이 제주문화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문화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문화적 접변을 낳는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에 유익한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사람과 문화가,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한 창의성과 재능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문화를 이해하고, 더욱 발전시키려는 이주민의 자발적 노력과 더불어 이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주도의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또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선주민들의 포용성도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주문화가 지역의 전통과 개성을 보존하면서도 다른 문화와의 교류와 접변을 통해 문화적 창조성과 다양성이 살아 있는 풍요로운 섬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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