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한달이나 앞서 달려 온 심한 무더위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느 때와는 다른 가뭄의 날씨는 거북의 등처럼 우리의 산하(山河)를 둑둑 갈라놓고 있습니다. 모내기를 한 것이 어제이고, 모종을 심어 대살에 힘을 키운지가 오래지 않은 고추 대도 이제는 지쳐버렸는지 한낮의 무더위가 야속하기만 한 때입니다. 망종(芒種)을 지난 시점이겠기에, 우리 제주에서는 유치와 보리를 수확해 들인 6월입니다만, 아직도 음력으로는 4월의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가 음력으로 윤 3월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해와는 달리 3월 한 달이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양력(太陽曆)을 중심으로 달을 계산하는 서양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겠지만, 음력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윤(閏)달을 계산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바퀴 도는데(공전)에는 365.2422일이 걸리고,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 데는 354.3671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구와 달의 공전주기가 차이를 보이는데, 달의 공전주기를 지구의 공전주기에서 제하게 되면 약 11일의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19년에 7번, 평균적으로 5년에 2번꼴로 30일을 추가하여 윤달로 정해 오면서 그 편차를 보정하고 왔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윤달이 생긴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이 윤달을 음력 12달 이외로 생긴 ‘공달’, 정상적인 12달과는 달리 정상적이지 못한 달, 어느 달에도 속하지 않는 ‘빈달’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윤달은 남은 수를 모아서 만든 달’로 여겨 중요한 일들은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보내는 달로 취급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윤달을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공달’ ‘헛달’로 여겨, 무슨 일을 해도 어디에도 저촉됨이 없는 무탈한 달로 인식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간 여러 가지 이유로 행하지 못했던 집수리, 이사, 각종 공사, 묘 이장, 묘 터 개·보수, 죽은 사람이 입는 호상옷 등을 이 시기에 많이 해왔다고 한다.

우리 제주에서는 윤달에 이장과 호상옷을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장(移葬)하는 것을 ‘천리한다’고 했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른 풍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오래되지 않은 경우는 그 관(棺)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만 오래 된 경우는 칠성판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수의 속에 뼈만을 간추려 맞추고서 칠성판에 싸서 운구(運柩)를 합니다. 운구 때와 하관 후 흙을 덮을 때가지는 햇빛을 보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그리고 이장을 위해 파낸 무덤에는 삶은 달걀과 무쇠조각을 묻고, 버드나무 가지를 꽂아 둔다고 합니다. 이는 이곳에 모셨던 혼령(魂靈)이 돌아와 시신(屍身)을 찾을 경우를 예상하여, 달걀은 생긴 것처럼 모른다며 “데구르” 굴러가고, 무쇠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묵묵부답이고, 버드나무는 생긴 것처럼 ‘하얀 속살을 보일 때’까지 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혼령이 이장(移葬)한 곳으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호상옷은 일상의 생인이 입는 옷과는 달리, 상(喪)을 만나 시신(屍身)이 입는 옷으로 관념하기에 정상적이지 않는 ‘공달’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명주(明紬)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으며 시신을 씻은 후 바지부터 입혔다고 합니다. 옷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고 고름은 매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호상옷을 만드는 것을 중히 여겨 미리 만들어 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호상옷은 장마가 심한 때는 잠깐의 햇볕에 말려 손을 보기도 했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토요일도 휴무일로 지정된 지금과는 오래지 않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을 ‘반공일(半空日)’ 일요일을 ‘공일(空日)’이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뚜렷이 정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반공일이 그리도 기다려진 적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기대했던 아이들의 바람인양 말입니다.

우리 선인(先人)들이 공달이라고 하여 2, 3년에 한번씩 오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윤달(閏月)을 정해놓고, 바쁜 일상으로 할 수 없었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할 수 없었던 집안의 대사나, 일생을 통해 준비하여 할 도리들을 행했던 선인들의 노고를 보면서, 언제나 거기에 합당한 사안(事案)을 만들어 시간을 다퉜던, 선인들의 지혜를 새삼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촌음(寸陰)을 다투며 다람취 채바퀴 돌 듯 하는 일상(日常)에서의 탈출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도시인들의 여유와 거기서 얻는 휴식, 새로움, 따뜻함을 통해 새롭게 기약하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윤달(閏月)이 우리 선인에게 주었던 가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는 하지(夏至)를 향해 달려가고만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무더위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지요. 이 땅을 터전으로 삼아 삶을 살아야 할 우리들이고 보면, 지구를 떠나 살 수 없듯이 이 더위도 우리 곁에 두고 살아야 하겠지요.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들이고 보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면서 살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정말 더위의 혹독함에 힘겨워하는 가난한 이웃과 연로한 노인들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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