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일이 벌어지고 있다] 11. 어음2리
빌레못 굴·허브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업체·주민 2각1조 ‘화장품 마을’ 태동

▲ 어음2리 허브 육묘장(주식회사 엔이에스티 운영)에서 자라고 있는 허브의 한 종류. 문정임 기자

[제주도민일보 문정임 기자] 문제 하나. 애월읍 26개 마을중 가장 고지에 있는 마을은 어디일까? 이 마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 ‘빌레못 굴’이 있고,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 타제석기와 ‘황곰’ 뼈가 발견됐다. 답은? 바로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다.

어음2리는 평화로 북쪽에서 겨우 4㎞ 떨어진 해발 200m 고지에 위치했다. 주로 브로콜리와 수박·양배추 등을 재배하는데, 고지대인 탓에 타 지역보다 농작물을 늦게 출하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다. 경사진 지형은 해안마을은 물론 여타의 중산간 마을과도 다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허브를 통한 ‘천연 화장품 마을’로의 변신을 시작한 것이다.

주민 23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20여농가가 올초 겨울, 허브 모종을 심었다. “월동채소 과잉 생산이 매년 반복되는 등 몇 가지 밭작물 만으로는 희망이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체험활동을 통해 매력을 전하면 부가소득도 창출할 것으로 판단했다. 강경윤 이장(47)은 “일단 선점을 하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 육묘장. 문정임 기자
▲ 지난 15일 육묘장에서 강경윤 이장(사진 왼쪽)과 오병철 (주)엔이에스티 이사를 만나 허브를 이용한 화장품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정임 기자
▲ 트레이판에서 자란 허브 씨앗은 조금 더 넓은 화분으로 옮겨져 성장한다. 문정임 기자
▲ 사진 왼쪽 트레이판. 문정임 기자
▲ 최근 들여온 기름 추출기. 기계 왼편에 허브를 넣으면 3~4시간 뒤 착유가 끝난다. 문정임 기자
▲ 강경윤 이장의 밭에도 10여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문정임 기자

시스템은 이렇다. 제주테크노파크에 본사를 둔 ㈜엔이에스티가 마을에 상주하며 주민들과 허브를 키운다. 허브씨를 모종으로 키워내는 일은 마을에 육묘장을 가진 업체의 일, 모종을 밭에 심고 수확때까지 가꾸는 것은 주민들의 임무다.

수확인 끝난 허브는 전량 업체가 사들인다. 업체는 허브를 기름 등으로 가공해 천연 허브를 필요로 하는 화장품 회사 등에 판매한다. 쉽게 말해 원재료는 주민이, 1차 가공은 업체가 맡는 식이다.

마을에서 재배하는 허브는 종류가 꽤나 다양하다.

마야시대부터 시리얼로 먹어 온 ‘아마란스(Amaranth)’, 기관지 천식에 좋은 국화과의 ‘카모마일(Chamomile)’, 감기에 특효인 ‘에키네시아(Echinacea)’를 비롯해 ‘칼렌둘라’ ‘로즈마리’ ‘파인애플세이지’ ‘타임’ ‘레몬밤’ ‘마라골드’ ‘스피아민트’ 등 일일이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 정도다. 에키네시아처럼 우리나라에는 잘 없는 수입종도 다수 키우고 있다.

허브(herb)는 푸른 풀을 의미하는 라틴어 ‘허바(herba)’에서 생겨났다. 향이 있으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을 총칭한다. 세계에는 2500여종, 우리나라에는 1000여종이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용, 미용, 아로마테라피, 향신료, 관상용 등 활용처가 다양하다.

색색의 허브가 자라는 밭은 그 자체로도 ‘돈이 되는 경관’이자 어음2리의 브랜드다. 지난 주말(15일) 허브 육묘장에서 만난 오병철 ㈜엔이에스티 이사는 “5월, 눈이 채 녹지 않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푸릇푸릇한 허브의 싱싱함을 보여주는 것이 마을과 업체가 함께 꿈꾸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허브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그 길을 걷고 체험하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란다. 

오 이사가 말한 길은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빌레못 올레길’이다. 최근 주민들은 마을내 명소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한 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길을 냈다.
 
길은 △돔배물(100년전 제사에 사용했던 도마가 떠올랐다는 전설이 있는 연못) △빌레못 옛날 길(우회도로 개설로 사람들이 30년간 통행하지 않았던 길 정비) △빌레못 동굴 △빌레못 숲길 △신시국궁장 △애월자연농원(무항생제 유정란 생산 농장) △지헌목장(제주 최초 HACCP 인증 젖소목장) 등을 지난다. 현재 허브가 재배된 13만여㎡의 밭은 이 빌레못 올레길이 지나는 곳을 중심으로 모여 앉았다.

이와함께 주민들은 빌레못 굴의 활용안에도 행정과 논의를 해 볼 계획이다. 1970년대 발견돼 길이가 1만1749m로 확인된 ‘빌레못 굴’(천연기념물 지정)은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이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와 한반도 연륙설을 뒷받침할 황곰(시베리아 등지 서식)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4·3의 아픔 역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학계와 지자체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현재는 입구에 출입을 금하는 쇠문이 굳게 잠겨졌다.

▲ 빌레못 굴 입구. 오른편에 안내석이 있다. 문정임 기자
▲ 빌레못 굴 입구. 출입이 금지돼 있다. 문정임 기자

빌레못 굴에 동행한 강경윤 이장은 “잘 모르는 주민들의 눈에도 빌레못 굴은 가치가 큰 자원으로 생각된다”며 “안전한 구간 일부라도 일반에 개방해 활용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어음2리는 곧 허브 체험장 조성을 앞두고 있다. 일련의 계획을 들은 제주시가 올해 베스트특화마을로 어음2리를 선정, 5000만원을 지원했고 ㈜엔이에스티가 2000만원을 보태기로 했다. 강 이장은 “작은 마을이지만 생태가 화두인 새로운 관광패턴에서 어음2리가 선보일 매력은 반드시 있다고 본다”며 “2~3년 후 어음2리를 다시 주목해달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밭작물만 재배하던 100여 가구의 작은 고지마을 어음2리가 2012년, 허브와 생태라는 신 작목에 깃발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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