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용인 /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신용인

민선 5기 우근민 제주도정의 비전은 ‘도민이 행복한 국제자유도시’다. 민선 4기 김태환 제주도정의 비전 역시 ‘국제자유도시’였다.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정 이후 누가 도지사가 되느냐에 상관없이 제주는 국제자유도시의 실현을 지상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 한다)은 제1조에서 이 법의 목적이 국제자유도시의 실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제2조에서 국제자유도시를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특별법에 의하면 국제자유도시는 다음의 두 가지를 추구한다.
ⓛ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② 기업 활동의 편의 최대한 보장
또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 규제의 완화
②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의 적용
따라서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은 제주 내의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제주를 사람·상품·자본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고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는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국제자유도시가 되면 제주도민의 소득과 복지가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쉽게 말하면 제주를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와서 마음껏 돈 벌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놓으면 제주지역 내에 돈이 많이 들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주도민들도 덩달아 잘 살게 되고 행복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국제자유도시의 요체다.

그러나 오늘날 제주의 실상을 돌이켜 보면 제주도민들이 잘살고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상태다. 국제자유도시의 추진으로 개발의 논리가 제주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돼 무분별한 난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로 인해 천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제주의 자연과 제주인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지역 문화는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제주의 양대 산업인 농업과 관광업도 점차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으며 지역경제는 피폐해지고 있다. 이러한 제주의 현실은 여과 없이 제주도민의 삶에 반영돼 도민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이 점은 1인당 GRDP(지역내 총생산) 통계를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제주도민 1인당 GRDP는 1619만 원으로 전국 1인당 GRDP 2116만 원의 76.5% 수준이다. 이는 10년 전 86.7% 수준에서 10.2%나 하락된 것으로 국제자유도시 추진 전보다 오히려 격차가 더욱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총체적 위기상황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진단해 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제주다움을 무시한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에 그 원인이 있다. 국제자유도시는 제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을 무시한 채 중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논리, 그리고 제주도정의 철학부재와 조급함에 의해 만들어진 장밋빛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제주답지 못한 비전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국제자유도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한다. 그 비전은 제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을 잘 담아내면서도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해 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전락한 도민의 소득을 한층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비전만이 현재 제주가 당면하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제주의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제주국제평화대회의 참가자가 2012년 2월 24일 선언한 「제주도 생명평화의 섬 선언」 및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및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읍·면·동 대책위원회가 2012년 4월 3일 선언한「제주생명평화촛불선언」에서 제주의 미래 비전으로 제시된 생명평화의 섬에 주목하고 있다. ⅰ) 생태적 지속가능성, ⅱ) 쉼과 치유의 본향, ⅲ) 인권과 정의, ⅳ) 제주의 비무장지대화(DMZ), ⅴ) 고도의 자치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제주 생명평화의 섬은 제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담아내면서도 녹색과 웰빙이라는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국제자유도시보다 훨씬 제주다운 비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평화의 섬이 국제자유도시를 대체하는 제주의 공식적인 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갈등이 생명평화의 문제의식과 논리에 따라 해결되어야 하며, 생명평화의 섬의 이념에 걸맞으면서도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이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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