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느닷없는 종북좌파(從北左派)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신문·방송·인터넷 등이 연일 종북 논란으로 장식되고, 경쟁적으로TV토론이 열리는 등 마치 세상이 뒤집어진것 처럼 야단이 났습니다. 새누리당과 극우보수세력이 오는 12월 대통령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위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비리와 관련해 제기된 당내 비공식적인 정파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전체, 그리고 민주통합당 문제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을 비롯해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비례대표로 당선된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넘어 국회의원들의 사상검증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명박 대통령도 ‘종북세력이 문제’라며 논란에 불을 붙이는 형국입니다. 육군장성 출신이라는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옛날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사화를 겪으면서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적이 있지 않느냐”고 조선 말 천주교도 박해 사례를 들며 북한 핵, 3대 세습, 주한미군 철수, 북한에 대한 지원, 연평도·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사상검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고 있지요.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다보니 지난 8일엔 서울에서 ‘종북좌파 담론과 마녀사냥으로 본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기한 문제들을 곰곰이 새겨듣다보면 종북좌파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 ‘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종북좌파 공세는 정치·경제·종교·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그들의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모든 시도들을 종북좌파라는 범주로 엮어 대중의 적대적 평가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담론 전략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12월 대선 승리를 기획하는 보수세력과 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을 은폐·엄폐해야 할 현 집권층의 공생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 교수는 “종북(從北)이라는 공안적 관점이 좌파는 물론 진보, 노동, 빈민, 소수자, 환경 등의 지향에까지 확산되고, 이 모든 것들을 적대시하는 관점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이는 미시적으로는 12월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거시적으로는 ‘반공’을 독재지배체제에 활용했던 1948년 체제의 공고화를 통해 기성권력들이 보다 확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국민에 의한 지배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됨을 짚었습니다. 때문에 한 교수는 실제로 문제가 되고 국가관을 흔들어놓는 것은 종북좌파라고 딱지지어진 사람들이아니라 이런 딱지를 붙이고 배제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종북(從北) 논란에 파묻힌 진짜 위험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중인 ‘종북(終北) 로드맵’ 이 아닌가 합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중국과 전쟁을 각오해야 할 위험천만한 전략이지요. MB정부는 지난달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일본에 보내 군사비밀보호협정과 군수지원협정 등 한·일 군사협정을 마무리하려다 야당과 국민들의 반발로 보류시켰습니다. 하지만 한·일군사협정을 임기내에 마무리 할 방침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얘기나 ‘일본이 서해에 이지스함을 배치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감안하면 논의 수준에서 그칠 문제는 아닌 것이지요. 조선일보는 ‘유사시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를 문제삼지 않기로 한 것은 한반도 급변사태때 중국의 서해통제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한·미 군함의 서해활동 기회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력적 판단이 담겨있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MB정부와 미·일동맹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주목합니다. MB정부에는 북한 흡수통일에 대한 집착이 똬리를 틀고 있는 반면 미·일은 MD(미사일 방어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여 비용도 절약하고 작전상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철저하게 중국을 견제·봉쇄하는데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MD에 가담할 경우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는 물론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동북아 분쟁 발생시 타격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제주 해군기지도 이와 맞닿아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고요.

이승만 1인 독재체제 구축을 위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광풍속에 3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무고한 도민들이 국가공권력에 희생됐던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 4·3의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 제주는 극우보수세력이 ‘1948 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지금 강정 해군기지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4·3의 아픈 기억을 화해·상생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세계 평화의 섬으로 가꾸는 꿈도 MB정부가 강행하는 해군기지로 가물가물해지고 있지요. 이를 그대로 두고 어찌 제주의 미래를 말할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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