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긴 팔 셔츠가 부담스러운 계절이 된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 심한 일교차를 보였던 지난주와는 달리, 한 낮의 뜨거움이 그늘을 찾게 하고, 시원한 얼음 냉수를 찾게 할 만큼 여름에 다가 선 듯합니다.
더군다나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 속에 노란 색 꽃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었던 넓은 유채꽃 밭에서는 하나씩 영근 유채씨 주머니가 성급한 수확을 재촉하고, 작은 바람에도 산들거렸던 넓은 청보리 밭도 영금을 재촉하면서 황금빛을 더해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끝난 아라동 딸기축제는 싱그럽게 단 향기의 여운을 입안에 가득 남긴 체 제 때 영글지 못한 막물들을 거둬들이기에 농부의 손이 바쁘기만 한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예전 우리 제주는 봄은 바로 춘궁기(春窮期)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기에 ‘조냥’을 한다 해도 없는 집에서는 이 대를 넘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을에 거둬들여 아껴 먹다가 남은 고구마 줄기와 널패, 무릇 같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보리가 유일한 생명유지의 수단이었습니다. 어린 보리를 베어다 풀보리죽을 끓여 먹으면서 힘든 봄을 지내야 했었던 것이 우리들의 어제였던 것입니다.

언제나 이 때 즈음이면 첫여름에 들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한 지역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가뭄이 시작됩니다. 이 때문에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애간장을 끓게 하는데, 논농사를 하는 육지에서는 모내기로 바쁜 때입니다. 또 몇몇 이른 지방에서는 보리베기를 서두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 여린 봄나물도 이만큼 자라 씀바귀는 줄기가 뻗어 나오고 냉이는 누렇게 변해가는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물이 잘 빠지지만 보수력(保水力)도 좋은 화산회토(火山灰土) 토양의 중산간 마을에서는 조상들의 기일 제사에 메밥으로 사용할 산듸 농사를 준비하는 때였습니다. 겨우내 묵은 밭을 쟁기로 갈아서 하는 처음 농사였던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없는 따사함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고 보다 나은 가족의 내일을 기대하면서 보냈던 월초(月初)와는 달리, 이제는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한 해 계획한 일들의 성과를 위해 시간을 다투고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싱그러운 계절의 향연만큼이나 열에도 성과가 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욕심으로 가득찬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달음으로 구제하고자 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을 맞아 사찰을 찾은 많은 중생들은 삶의 바른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면서 등불을 밝혔습니다.

어차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다양함 속에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임에도 언제나 나, 우리만을 먼저 생각해온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곤 이제는 더불어 사는 다른 이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대자연의 순리 속에 봄의 따사함과 여름의 뜨거움을 견뎌내면서 조금씩 영금으로 나아가고 있는 때입니다. 아직 다 차지 않았기에 성장의 아픔을 견뎌내면서도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대자연의 만물(萬物)이 이러한데,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인간들로서는 자신은 물론, 함께하는 다른 이의 아픔과 부족함도 간추리면서 결실을 위해 시간을 재촉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영금을 준비해 가면서 한걸음 되돌아보면서 함께 가야할 이웃도 생각하는 향기나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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