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이 /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이상이

20여 년 전 내가 학생 신분으로 대학병원에 임상실습을 나갔을 때,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인턴으로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 나는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크고 작은 촌지를 주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당시의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어떤 환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촌지 관행을 충실히 따르고, 다른 환자들은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그 관행을 따르지 못하는 모습이 같은 병동 안에서 대조적으로 연출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중증 환자일수록 의사들에게 더 의존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남들이 주는 촌지를 자신은 주지 못해서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중등교육을 받을 시기에 담임선생님들은 다양한 형태의 촌지를 받곤 했다. 학교 발전을 위해 돈을 모금한다는 명목으로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당시 돈 좀 있는 학부모들은 각자 알아서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전달했다. 내 자식을 특별히 잘 봐 달라는 유무언의 요구와 함께 말이다. 이것 또한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초중등 교육을 마치는 동안 학교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는데, 이유인 즉, 먹고 살기에 바쁜 탓도 있었겠으나 주로는 돈이 없어서였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면 응당 봉투 하나를 내놓아야 하겠는데, 이게 영 자신이 없으셨던 게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촌지 문화가 우리사회의 큰 쟁점으로 등장하더니 언제부턴가 서서히 촌지가 자취를 감췄다. 나는 요즘 병원에서 촌지가 오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촌지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 담임선생님들은 학부모로부터 받은 작은 정성마저도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하며 받지 않거나 돌려주기에 바쁘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전개된 데는 전교조가 큰 역할을 했다. 전교조는 조직의 운명을 걸다시피 하면서 학교에서 ‘촌지 추방’ 운동을 벌였고, 이는 우리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덕택에 병원의 촌지 관행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학교에서 촌지 추방 등 각종 ‘학교 비리 추방’에 앞장섰던 전교조는 보수진영으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평가와 마타도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광범위하게 얻어나갔다. 그래서 오래 지나지 않아 전교조의 꿈이자 궁극적인 목표인 전인교육이 마침내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나 전교조 운동은 상승세가 꺾였고,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전인교육은커녕 그 반대의 경향인 ‘나만 살자’ 식의 경쟁만능주의 입시교육만 강화됐다. 교육의 양극화와 함께 인성의 수준은 갈수록 떨어졌다. 학교 폭력, 교권 추락, 만연한 욕설 등으로 학교가 난장판으로 바뀌고 있고, 연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해 학교폭력 등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성교육 실천포럼’이 열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고 300개 단체·기관·개인이 참여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포럼에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준비위원장을 맡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우리 교육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인성교육 실천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자는 내용의 인성교육 실천 취지문을 발표했다.

이날 교육계를 비롯한 각계의 전문가들은 교육평가와 입시에 인성영역을 반영하는 등 실질적인 인성교육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는 범국민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나는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효종 교수 등의 보수진영이 추구하려는 인성교육은 전교조의 전인교육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보수진영의 이러한 움직임이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시장만능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질서를 철저하게 옹호하는데, 일자리가 양극화된 가운데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나만 살자’ 식의 경쟁을 벌이도록 몰아가는 근본 원인인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함께 살자’ 식의 타인 존중과 배려의 인성교육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제 좌우를 넘어선 ‘원인 처방’이 필요하다. 우리사회가 낡고 교조적인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로 전진할 때라야 입시 경쟁교육을 넘어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마침내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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