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종 / 문화 활동가

▲ 지금종

제주도만큼 테마파크와 박물관이 많은 곳이 있을까? 박물관 수만 해도 전국의 광역시도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하지만 인구비례로 따져보면 단연 압도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가 최고의 국내 관광지라는 데서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그 많은 박물관의 내용과 질의 수준을 살펴보면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못하다. 박물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기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거나 비오는 날 야외활동이 어려울 때 대체공간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박물관 유지와 발전을 위한 경제활동을 나무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나 박물관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능과 역할, 또한 지역의 역사·문화·환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가시리가 마을 공동목장 부지에 농림부가 지원하는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조랑말 박물관’을 조성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말을 키워내던 국영목장인 ‘갑마장’ 부지에 박물관이 세워짐으로써 장소적 역사성을 확보하고 있고, ‘제주마’라는 제주전통 자원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특화성과 차별성이 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마을에서 설립한 리립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마을 단위에서 세운 박물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마을사 박물관’ 수준의 작은 박물관은 다른 지자체에도 간혹 존재한다.

하지만 ‘조랑말 박물관’ 수준의 규모와 질을 담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는 그야말로 획기적 사건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 박물관은 유물 전시로 그치는 박제화된 박물관을 지양하고, 교육과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 마을과의 연계를 통한 ‘에코 뮤지엄’을 꿈꾸고 있다는 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리의 ‘조랑말 박물관’은 본격적인 개관도 하기 전에 커다란 시련에 봉착해 있다. 박물관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관련 유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유물이 생활 속에서 멀어지는 데다 유물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함으로써 급격히 유실됐기 때문이다. 유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있었는데…”라는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유물이 전부는 아니지만 유물 없는 박물관은 앙금 없는 찐빵 아니겠는가. 가시리 마을회가 유물을 확보하기 위해 구입, 임대 등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민의 도움 없이는 거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다른 마을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를 살린다는 사명과 자부심으로 곳간에서 잠들고 있는 유물들이 있나 살펴야 될 때이다. 그것이 선조의 숨결을 후손에게 전하는 길이며, 현 세대가 해야 할 숭고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전해들은 미담이 부럽기만 하다. 충남 청양군 비봉면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분이 돌아가신 후, 평생 모아 소장하고 있던 유물 총 477종 2700여 점이 청양군에 기증됐다는 것이다. 평생 동안 사재를 털어 모은 유물을 청양박물관 건립 계획으로 유물을 수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유족들이 청양군에 기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청양군은 대치면 장곡리 일원에 2013년까지 역사박물관을 건립한 뒤 고인의 유물을 박물관 내에 별도로 전시관을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도 이와 같은 훈훈한 소식이 들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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