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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힐링캠프’라는 TV프로그램이 있지요. 연예인에서부터 대통령을 꿈꾸는 잠룡(?龍)들까지 두루 출연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삶에 지친 이들을 휴식과 치유로 인도한다는 콘셉트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데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제주올레를 비롯한 생태관광이 뜨는 이유도 자연을 통해 삶에 찌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healing)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유명인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나 자연을 통해서 휴식을 얻고 치유도 할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지요. 힐링은 결국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림에서 이뤄질테니 말입니다.

호주제 폐지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고은광순님은 최근 출간한 「힐링」이라는 책을 통해 힐링의 요체를 모든 일에 대한 ‘감사함’과 개인의 ‘내공쌓기’로 정리합니다. 이 책에는 지난 2010년 가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공주시 계룡면에 자리잡아 한의원을 운영하며 2년여간 살아온 삶의 기록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향해 던지는 조언이 담겨 있지요.

그는 1970년대 학생운동과 1990년대 여성운동으로 이어진 과거의 화두가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였다면, 이제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의 에너지를 높이는 진화된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상, 더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인간적인 세상을 향한 열망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회 시스템을 고치는 것에서 구성원의 에너지, 즉 내공을 쌓는 것으로 방법이 바뀌었다는 얘깁니다. 내공이 높아진다는 건 상대를 바꾸려는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다는 것이고,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뀌게 될 것이니 내공쌓기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해서 몇년전에 들을때는 화가 치밀어 올랐던 ‘히틀러는 천사’, ‘전두환도 부처’니 하는 얘기들에 공감을 하게 됐다고 하지요. 부처나 천사라야 악역을 맡고, 누군가가 악역을 맡아야 대중의 의식이 높아지기 때문이랍니다. 진보의 위기를 불러온 통합진보당 사태도 내부의 치부를 세상에 까발리게 된 것이니 감사한 일이고,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들이 다시는 저런 대통령을 뽑지 않도록 느끼게 한 부처이자 천사이니 고마울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뜯어고치기 위한 ‘사회적 힐링’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과거에는 저항이 급선무였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문제해결을 돌아볼때가 되었고, 이를 위해선 구성원 개개인의 내공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건 그 다음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게 순식간에 바뀌지만, 구성원 각자의 내공과 지혜가 높아지면 시스템이 조변석개(朝變夕改)처럼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고, 그 내공과 지혜가 사회를 평탄하게 진화시키는 길로 이끌 것이니 말입니다. 내공이 쌓여서 인간의 격이 달라지면 문제를 보는 관점과 해결책이 달라지고, 격이 달라진 개인이 모인 사회와 국가도 달라질 것이니 조용하지만 힘있고 아름다운 혁명이 아니냐는 얘기지요.

제주사회의 힐링은 어디에서 시작돼야 할까요. 64년전 이데올로기의 광풍속에 줄잡아 3만여명의 도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 4·3이 강정에서 재현되고, 도지사가 바뀔때마다 재편되는 지방권력과 토호세력의 ‘파이’ 다툼과 각계각층에서 저마다 쏟아내는 이해관계에 얽힌 목소리들로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결론이 내려진 4·3을 공산폭동으로 매도하는 이명박 정부와 극우보수세력의 역사 반란 시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과 군산토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structive complex)의 이해관계에 편승해 몸집을 불리려는 해군과 정부의 욕심을 감사하게 대하며 내공을 쌓아가기엔 분노가 앞섭니다. 평화·인권·환경·생명의 인류보편적 가치와 절차·과정의 정당성 등을 요구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전국 각계의 국민들에게 종북·좌파라는 색깔을 씌워 무자비한 경찰 공권력을 동원해 인권을 유린하고 억압하는 현실도 그러합니다.

이는 올곧은 진실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땅에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하고, 화해·상생의 정신을 토대로 평화·인권이 살아숨쉬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가꾸는 4·3의 정신과 가치가 제주사회와 우리나라에 내재화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그리고 아직은 모든일에 대한 감사함과 내공쌓기 보다는 부정과 부조리에 분노할줄 아는게 먼저가 아닌가 합니다.

오석준  sjoh@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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