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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작 입하(立夏), 성장을 준비할 때[칼럼] 김동섭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갑자기 다가선 여름 날씨, 심한 일교차로 아침 저녁의 기온차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가정의 달의 싱그러움만이야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하루와 달리 커 가는 키만큼 화목한 가정의 따사함이 온누리에 가득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늘어만 가는 결손(缺損), 조손(祖孫) 가정에서는 그러한 모습 보다는 한 숨만 더 해가는 때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때 가출한 학생들이 거의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가족을 이루면서 잠자리를 같이하는 ‘가출 팸’이라는 것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습니다. 가출 팸을 운영하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정해 놓았는데, 그것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한 체벌을 가하였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이의 운명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일로 그 아이는 유명(遺命)을 달리하게 되었고, 겁이 난 아이들은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던 그 아이의 시신마저 유기하게 된 사연들이었습니다.

이유 없는 사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가족이 해체되는 일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몸을 부데끼며 생활하는 가정이라는 공간만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존립돼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유에서 아빠와 엄마의 존재가 상실되고 있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보살핌과 배려로 존중받고 양육 받아야 할 이 땅의 많은 어린이들이 가정의 보호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가출 팸의 사연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말 먹을 것이 없어 고난을 당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믿으며 오늘의 배고픔을 함께 했던 우리 가족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보릿고개의 그 예전 배고픔의 한 켠에서는 언제나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참고 견뎌내신 우리 어머님이 계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의 부재(不在)를 알려오고야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님의 부재, 그 상실감은 견뎌내기 어려운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부재의 상실감이 이토록 큰데, 결손 가정의 아픔이야 이루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의 현장이 내 이웃의 일이었지만, 혹 우리는 외면하지는 않았었는지요? 그 아이들의 긴 한숨이 한(恨)이 되지는 않았는지요?

가정(家庭)은 다른 조직과는 다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이 나름의 위치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며 의식주(衣食住)의 삶을 영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오늘보다는 다른 내일을 꿈꾸며, 시간을 나투기도 하고 식력을 연마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위계질서 속에서 생활하는 곳입니다. 성장, 변화해 내일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인내하며 따사함과 사랑, 배려를 보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정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그 마을이 모여 지방과 국가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을에도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었고 지방과 국가에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정 위계질서가 있고 성장과 변화하는 내일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배려하는 곳으로 가꾸고 있는지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을 찾아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많은 사회적 문제의 치유를 생각하기 이전 건정한 사회의 구성부터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정에서, 사회에서 경험 많은 분들의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는 경험에서 얻은 신뢰(信賴)와 예의(禮義)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급하게 먹은 밥에 체하기 쉽듯이 차근 차근 주변을 둘러보면서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배려와 인내,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면서 말입니다.

겨우내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내고 나니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많은 여름이 그러하듯 하루를 달리 커가는 농작물들은 가을의 결실을 준비하기 위해 영글어만 가겠지요? 미물들도 제각기 역할을 다하며 생의 의미를 다해가고 있는 이 때,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인간들은 더불어 사는 자연은 물론, 이웃하는 여러 사람들도 둘러보면서 나름의 역할을 다하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감사와 보살핌이 가득한 시절이고 보면 더욱 많은 역할이 기대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후회(後悔)를 하고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같은 후회를 여러번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면 후회는 그 때, 단 한번으로 끝낼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반 백년의 시간이 세월을 만들었고 까까머리 검은 아이도 이젠 중년의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이 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더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뜨거워지는 대지를 바라보며 인생의 결실(結實)을 그러보며 성장을 준비할 때입니다.

김동섭  kds0493@je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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