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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다양성의 날[칼럼] 지금종〈문화활동가>
▲ 지금종

‘세계문화다양성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연합(UN)이 2002년 제57차 총회에서 5월 21일을 ‘대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로 지정한지 10년을 맞았지만, 정부가 지난 1973년에 10월 20일을 ‘문화의 날’로 제정한 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듯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기념일일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UN 산하의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는 한마디로 문화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문화다양성이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요인인 동시에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기제라는 것을 역사적 경험 속에서 깨우친 데서 연유한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는 급격한 지구화 과정이 한편으로는 문화 정체성의 표현과 창조성의 새로운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약한 민족과 국가, 또 민족과 국가 내의 사회적 약자의 문화를 소외, 약화시킴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있어 ‘문화 다양성’ 증진이야 말로 절실한 과제이다.

나는 오래전에 관주도의 행사진행, 국민의 인식부족 등의 이유로 뚜렷한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인 5월 21일로 옮겨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문화행사로 만들자는 제안을 정부에 한 바 있다. 문화에 대한 세계적 인식 변화와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살펴 볼 때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문화 다양성 정도가 매우 낮은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큰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문화는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미국 등이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문화’ 그 자체가 지니는 무한한 경제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가 생활습관, 감성, 욕망 등 대중의 무의식과 신념, 도덕 등 의식체계를 비롯해 정체성을 규정하고 관장하는 영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컨대 미국영화라는 문화상품은 대중에게 미국 상품에 대한 소비욕망을 부추기고, 미국인과 그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동일시를 일으키며, 미국인의 가치관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만드는데 이는 정체성의 혼란, 언어의 획일화 효과를 생산함으로써 커다란 문화변동을 가져온다. 우리 사회에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이러한 문화변동은 소비행태 변화로 이어져 일반 상품 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막을 수도 없다. 생물의 종 다양성이 인류를 포함한 자연생태계에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이듯이 문화의 종 다양성은 인류가 건설한 사회생태계의 지혜, 창조성과 가능성을 보장하는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문화교류는 문화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한 일정한 원칙 속에 이뤄져야 하는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 하지만 문화교류는 ‘자유롭지만 불공정한 거래’가 아닌 ‘자유롭고도 공정한 거래’라는 정신과 원칙하에 이루어져야지 일반 상품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2009년, 정부는 “문화상품과 서비스가 단순한 상품이나 소비재로 취급되지 말아야 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선언’을 근거로 만든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했다. 2007년에 있었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약에 반대하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비준을 미루던 협약을 마침내 비준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배경에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협약 비준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문화를 또다시 경제정책에 복속시키는 결과를 낳은 정부의 이러한 모순된 태도는 안타깝게도 문화를 무역의 대상으로 취급하려는 미국과 유럽으로 상징되는 반대 세력 사이에서 언젠가 반드시 딜레마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약 비준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으며, 협약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을 위해 적절한 문화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공공 및 민간분야,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를 단순히 삶의 장식적 차원이나 상품으로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발전의 문화적 차원을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주요한 사회정책의 하나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과 적극적인 정책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시민사회에서도 문화다양성을 문화개방 문제로 제한해 논의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의 문화 다양성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도 ‘문화다양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지금종  c-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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