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혜경 / 아트 스페이스C 대표

▲ 안혜경

제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막 끝났다. 올해에는 주상영관인 신촌 아트레온의 4개 상영관 이외에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개막식, 송파구민회관에서 폐막식을 가지며 구청과 손을 잡고 좀 더 폭넓게 관심과 지원을 끌어들이며 시민들을 영화제로 맞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전국의 여성영화쟁이 다 모여라’라는 간담회에서는 각 지역 여성영화제 인력과 재정의 어려움은 물론 그 보람을 공유해가며 여성문화운동을 해나가는 영화제 관계자들 끼리 위안과 지지와 아이디어들을 얻으며 격려했고 앞으로 지역 연대의 다짐들을 했다.

과학적 분석과 논리적 추론에 필요한 측정 가능한 요소들 이외에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복잡한 삶의 요소들을 여러 영화들의 다양한 결로 느낄 수 있는 기회! 마치 가지각색의 실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며 짜진 옷감들로 서로 다른 체격의 몸에 독특한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 듯, 삶의 여러 겹들을 이리 저리 엮어 펼치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 삶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제!

「여성 예술 혁명: 감춰진 역사」란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지 듯, 수많은 여성예술가들이 ‘페미니스트 예술혁명이 어떻게 우리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듯, 여성영화제는 배출된 많은 여성감독들이 투쟁하듯 찍어낸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이 사회 안에서 알게 모르게 받고 있는 억압과 차별을 드러내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일 뿐 아니라, 여성의 욕구와 욕망과 능력을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드러내며 연대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나가는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체험과 사유의 공론장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그러니 여성영화제에 참여해보면 ‘왜 여성영화제인가’에 대해 수긍하며 그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겪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그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상황을 전해주며 여성들의 용기있고 부드러운 ‘돌봄’의 기온을 감지함과 동시에 언제고 그 두려운 현실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3·11 여기에 살아」,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은 러시아 여기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자유의 쓴맛」, ‘여성의 몸’을 둘러싸는 셀 수 없는 다양한 욕망과 소외와 연대를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들! 여성의 몸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는 ‘성매매’ 문제뿐만 아니라 모델이나 가수·배우 등 여성연예인을 둘러싼 인권유린과 엉킨 실타래 같은 복잡한 관계성의 문제들, 여성의 유방암 치료를 위한 지원의 연대를 한 꺼풀 벗겨내어 자본은 인간의 슬픔과 고통마저도 연민과 애정으로 포장한 상품으로 팔아 뱃속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 「핑크리본 주식회사」, 남성은 성적 욕구의 주체자로서 이를 만족시켜줄 수많은 연구와 결과들이 있지만 여성에게 ‘성’은 모를수록 순진하고 순수하다는 무지이데올로기로 억압하는 성정치적 상황에 대해 자신들의 욕망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와 경험에 기초한 인터뷰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든 「지스팟, 여성 쾌락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란 영화로 ‘헤어드레스’의 감독 ‘도리스 되리’는 내전 상황에서 벌어진 학살로 가족을 잃고 성폭행까진 당해 불법체류성매매 여성으로 근근이 하루를 이어가다 홈리스 펑크족과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폭력·소외·사랑·연대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뤄 절대적 찬탄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시절 정치적 도피를 한 모녀의 불안한 감정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 만든 개막작 ‘더 프라이즈’는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를 기억해내게 했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주제는 ‘Spring: 희망을 조직하기’였다. 단단한 땅을 갈아엎고 골라내야 씨앗을 뿌릴 수 있듯, ‘희망은 깊게 파묻힌 파국의 지점’을 꺼내고 들여다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 여전히 유효한 여성영화제의 소중함을 실감하며 9월에 있을 제주여성영화제 준비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