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이 /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이상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대중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된 용어 중의 하나가 소통(疏通)이다. 소통이란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나 의사가 서로 잘 통한다는 뜻인데, 사실 이 말은 일반에 널리 사용되던 대중적인 용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소통을 말한다. 아마도 이 단어가 이렇게 유명해진 데는 이명박 대통령이 크게 한몫을 한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특성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통’, 즉 소통의 부재를 거론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불통의 반대말인데, 곧 상호 간에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사방팔방으로 다 막혀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소수의 측근들과 의논할 뿐이며, 공적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상방향의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지시와 자기 뜻의 전달에만 능했다. 이건 과거형 토건사업에서 보던 기업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에는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소통과 참여의 민주적 국정운영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정치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처음 제기된 계기는 임기 첫해에 직면했던 촛불집회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방식이었다. 밖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청와대는 듣지 않았고, 도대체 국민들 사이에 무슨 불만과 무슨 요구가 있는지에 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촛불의 불만과 요구는 무시와 진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정부의 주요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소영’ 중심의 돌려막기 인사는 지난 4년 동안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을 포함한 대부분의 논객들이 동의하고 있으니 거의 이론이 없어 보인다. 또, 최근에는 측근비리까지 겹쳤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 원인을 ‘통치이념의 부재’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뚜렷하고 강력한 통치이념을 가지고 있다.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선별적 복지 중심의 작고 효율적인 복지정책이 그것인데, 한마디로 ‘엠비노믹스’다.

이명박 정부의 통치이념인 ‘엠비노믹스’는 현 정부의 가치와 방향성을 대표한다. 그러면 이러한 가치와 방향성(이념)은 소통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특정 주체의 이념이 뚜렷하고 강력하면 소통을 잘 하기 어려운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소통의 의미가 상대방을 이겨먹고 내 맘대로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소통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핵심이다.

영어사전을 보면,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mutual understanding, sympathy of each person for the other)이다. 상대방을 이겨먹거나 반대로 상대방에게 지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통은 충분히 듣고 상대방의 논리와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통치이념, 즉 가치와 방향성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소통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기 때문에,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기 때문에 그를 소통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건 자신의 정치이념이자 통치철학인 ‘엠비노믹스’를 실천하는 것으로, 진보진영이 장차 집권하여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을 관철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엠비노믹스’ 자체는 소통 여부와는 무관하다.

내가 현 정권을 소통 부재의 정권이라 부르는 데 동의하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상대방의 반대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엠비노믹스’를 고집스럽게 견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탄탄한 통치이념을 굳건하게 견지하려는 모든 정부는 당연하고 소망스럽다.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완벽해 보이는 통치이념과 방법론이라 하더라도 반대자와 소통하다보면 개선할 점이 상당부분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건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국가와 이익집단, 개인과 개인 간의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령,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가치와 신념을 꺾어 버리거나 무시하는 방식의 소통은 더 이상 소통이 아니다. 대화에 나서는 자는 모두 상대방의 견해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나의 입장을 잘 설명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참조할 부분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인데, 이게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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