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아마 성가스러운 모양이지요. 해군기지가 어쩌고, 세계 7대자연경관이 어떻고 하며 따지고 드는게 귀찮고 못마땅하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지난 23일 우근민 도지사는 주민자치위원 워크숍에서 “제주에 있는 사람들이 더 시비를 거는데 이는 창피한 일이다. 도청 주변에 걸린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고 개탄했답니다. 더불어 “7대경관에 지하강이 선정된 필리핀은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하고 국제비행장까지 만들려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도의원이 19명이었는데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41명으로 늘어났다. 19명이 견제하던 것을 41명이 하니까 한발자국도 못나가고 있다”고 했다지요.

제주도정 책임자라면 이런 ‘말씀’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먼저겠지요. ‘무늬만’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인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정부·해군의 눈치를 보며 시간만 끄는 동안 강정 구럼비바위가 속수무책으로 파괴되고, 정부·해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에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평화활동가들과 도민·국민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에 책임감부터 느껴야 한다는 얘깁니다. 사기업의 돈벌이 캠페인에 ‘올 인’하면서 빚어진 제반 문제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더불어 투표전화가 국제전화가 아닌 국내전화라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는 7대경관 문제도 그러합니다. 오죽했으면 강경식 도의원이 우 지사에게 “도민과 도의회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도지사가 되려한다.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을 개정해서 입맛에 맞는 도의원들을 임명하라”고 직격탄을 날렸을까요.

이번 ‘사건’은 진실이 불편하고, 진실을 캐기 위한 노력들이 성가신 권력의 속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빌려준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비롯한 이런저런 권력기관들도 매한가지겠지요. 민주주의는 어쩌면 의회와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의 권력통제 기능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되느냐에 성패가 달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언론이 제기능을 못하고 권력과 야합할때 민주주의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가는 역사가 가르쳐 줍니다.

우연히 ‘20세기 미국 진보언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사도어 파인슈타인 스톤의 평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책의 번역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의 여성 작가 마이라 맥피어슨이 평생을 진실캐기에 매달렸던 올곧은 언론인 스톤의 파란만장한 삶과 현대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을 정리한 책이지요.

스톤은 미국 정부와 주류언론에 의해 가려졌던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파헤치고 반전운동을 벌였으며, 매카시즘과 인종차별 등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누르는 모든 압제에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기자들의 ‘우상’인 고 리영희 선생에 비견할만한 언론인이지요. 특히 1964년 8월 미국 정부가 북베트남의 어뢰공격으로 미 군함이 격침됐다고 조작했던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것은 그 누구도 넘볼수 없는 기념비적 업적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미국정부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반복할때 의문점들을 낱낱이 제기하면서 거짓임을 주장했고, 이는 7년후 국방부 기밀문서가 폭로되면서 불편한 진실이 확인됐지요.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권력을 불편하게 했던 스톤을 집요하게 사찰하고 감시했던 문건들도 공개됐습니다. 담배가게며 극장을 가릴것없이 FBI가 무려 40년간이나 털고 털었지만 먼지 하나 찾을수 없었다고 합니다.진실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도덕성이 언론인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임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청와대의 개입하에 이뤄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권력범죄가 자행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오버랩됩니다.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던 1953년 잘나가던 저널리스트의 지위를 팽개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주간신문을 창간하면서 스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무능력에 따른 한계를 빼놓고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10년전쯤 고 리영희 선생은 한 신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땅의 기자들을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땅히 언론종사자라고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진실을 향한 열정과 정의감 등 기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샐리리맨적 생활인,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적 인간화되는데 대한 준엄한 질타시겠지요. 그 말씀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이런 저런 한계 등을 핑계삼아 적당히 이땅을 살아가는 기자의 부끄러움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