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영배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 조영배

경쟁은 한 사회를 아름답게 발전시키는데 필요하다. 그 경쟁이 정정당당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하는 심사로 온갖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부정과 추한 짓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의 위선을 볼 때는 누구나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수년 전에 그런 구역질을 느낀 적이 있다. 가짜 연구실적물을 만들어 부정한 방법으로 교수를 채용하려던 사건이 제주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필자가 구역질을 느낀 것은, 그렇게 버젓이 부정을 저질러 놓고도, 전혀 안 그런 척하며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뻔뻔스러움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요즘 문대성의 학위논문 표절사건이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수년 전에 엉터리 연구실적물을 은폐하려고 가증스러운 일들을 벌인 이들의 위선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엉터리 표절논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표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이 땀을 흘려 쓴 논문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뻔뻔스러움과 가증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체육계에 이런 식의 연구관행이 만연돼 있다는 소문이 진짜가 아니길 빌 따름이다. 하기야 체육계뿐이겠는가?

문대성은 국회의원 당선을 스스로 사퇴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연구에 몰입해 온, 이 땅의 많은 학자들과 그들로부터 배우고 있는 학생들 앞에 엎드려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아마 문대성은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러지 못할지 모른다. 엉터리 연구실적물로 교수에 임용된 자들이 여전히 그 가증스러운 얼굴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들이 여기저기에 버젓이 있음을 잘 알고 있을 문대성으로서는 사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소나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지 모른다. 그러나 제발 필자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으면 좋겠다.

2000년 전 예수는, ‘자신들만은 의인’이라고 강조하며, 가증스럽게 처신하던 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거친 욕설을 퍼부은 바 있다. 그래서 제주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가짜 연구실적물 사건과 교수채용부정사건이 터졌을 때, 부정을 저지르거나 부정을 옹호하고 덮으려던 자들을 향해, 필자도 예수처럼 큰소리로 외친 적이 있다. ‘당신들은 예수가 질타한 바 있는 바로 그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자식들이나 마찬가지요’

제발 우리 주위에 이런 ‘독사의 자식들’이 없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터져 나오는 부정 사건들을 보다보면, 하나같이 그 당사자들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가증스럽게 말한다. 학위논문 표절로 시끄러운 문대성 사건이나, 요즘 연일 터지고 있는 각종 이권 개입 사건들도 하나같이 그 사건의 이면에는 ‘독사의 자식들’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불현듯 강정마을이 필자의 머리를 스친다. 강정 마을에는 똬리를 틀고 있는 ‘독사의 자식들’이 없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강정마을에도 여전히 똬리를 틀고 앉아 강정 땅과 강정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독사의 자식들’이 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강정마을 공동체를 이 지경으로 파괴하고, 강정 중덕 바다의 생명을 옥죄는 현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자들과 세력들이 여전히 있기에 하는 소리다.

경쟁은 서로 다른 생각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어느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공정한 방법과 절차를 거쳐 경쟁하려고 하지 않고, 부정과 음모를 통해 죽이려고 할 때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자들일 수록 공정한 방법인 것처럼 위장을 한다. 예수는 바로 이런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질타한 것이다.

예수는 사랑을 말했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길 원했다. 때문에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예수는 유일하게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만의 승리를 위해 부정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런 부정을 공정한 것처럼 위장하는 가증스러운 자들을 향해 오늘도 예수는 질타하고 있을 것이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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