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과 관련한 어느 경마기수의 고백

 

[제주도민일보 김동은 기자] “기수들은 야생에 풀어진 한 마리의 나약한 개에 불과합니다. 살아남으면 남고, 죽으면 버려지는...”

제주경마에서 승부조작 파문이 불거지면서 한국마사회 제주경마 소속 기수들과 관리사들이 연이어 구속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승부조작 사건이 마사회의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26일 오전 1시30분께 제주경마 소속 기수 A씨는 ‘제주경마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먼저 경마종사인으로서 승부조작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A씨는 “저 역시 승부조작 유혹을 접하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에 흔들린 적이 있다”며 “‘가슴에 손을 얹고 넌 한번도 그런 적이 없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어 “제주경마 기수가 38명인데 10명을 제외하고는 어두운 유혹에 빠졌거나 한 두 번은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의든 타의든 기수들은 조교사나 마주, 말의 성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기수들은 말 그대로 경마의 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0년 3월 자살한 고 박진희 기수의 사례를 들면서 기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했다.

당시 부산경남경마장의 유일한 여자 기수였던 박 기수는 “기수생활이 너무 힘들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가 비정하게 느껴진다”며 “경마장은 내 기준으로는 사람이 지낼 곳이 못 되는구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박 기수처럼 소리없이 기수들이 사라진 이유에는 마사회의 문제도 있다”며 “일단 기수로 뽑은 후 가르치고 데뷔하고 난 뒤에는 나몰라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기수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 지, 왜 부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지,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며 “6개월 마다 기승계약에 나이가 들면 생존권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심지어 나이가 많은 어떤 기수는 마방을 돌며 폐지를 줍고 다니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기수들의 복지에는 신경쓰지 않은 채 오직 경마 시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본보 4월 25일자 5면 보도) 기사를 보면 승부조작을 근절하기 위해 기수들의 정신교육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종이에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은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0년 2월 기준으로 1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은 기수들도 있었다”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은 마사회가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마사회 제주경마 소속 기수들과 조교사 등은 브로커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우승가능 경주마나 기수의 상태 등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내부 경마정보를 제공한 혐의(한국마사회법 위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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