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데스크논단
민주주의에 반(反)하다[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강정마을에 사실상 해군기지 반대 집회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강정마을회가 지난 15일 오후 5시부터 제12차 강정 집중방문의 날 행사가 예정된 5월12일 오후 3시까지 강정천 체육공원과 주차장, 해군기지사업단 정문, 공사장 정문, 중덕삼거리, 강정포구 등에서 옥외집회를 열기 위해 신고서를 제출했는데, 서귀포경찰서가 불허한 것이지요.

이유인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한다’는 조항에 따라 강정마을회에 집회금지 통고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지난 17일엔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반대시위를 벌인 평화활동가와 목사 등 3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끌려갈지도 모를 노릇이고요.

강정마을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경찰의 집회 금지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 등을 통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상황은 쉽게 달라지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함’에 대한 경찰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고 있고, 인권단체 등이 위헌소지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합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정치의 가치 = 존엄
행동하는 지식인을 지향한다는 의미의 지행(知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하승우는 최근 발간한 책 <민주주의에 반(反)하다>에서 ‘정치의 가치는 존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3·1운동에서부터 강정에 이르기까지 최근 100년간 권력과 자본이 앗아간 존엄을 되찾기 위해 싸우며 살아있는 민주주의 역사를 써온 민중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실수와 실패는 있을수 있지만, 그 행동이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기댈곳이 될때 혼란스럽지만 존엄한 세상이 만들어질수 있다’고 말입니다.

일제시대 13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마을의 땅을 되찾고 학교를 세워 생활을 나누고 공동체를 배우는 등 사는 것과 공부하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고 정치였고 배움이었던 소안도가 그러합니다. 지난 2003~2004년 주민들 스스로 주민투표를 ‘조직’해 2만가구가 넘는 주민 가운데 72%가 참여하고 91.8%가 반대한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부안 핵폐기물 반대 투쟁도 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 존엄을 지켜낸 소중한 사례로 전합니다.

쇠고기 광우병 파동때 ‘명박산성’을 돌파하러 거리로 나섰던 주부들, 팔당 ‘두물머리’를 지키려 싸우는 농민들,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 시장 주민소환을 성사시킨 하남 시민들도 있지요.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은 평화와 인권, 환경과 생명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와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6년째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승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중과 시민을 억압하면서, 민중과 시민에게는 언제나 권력이 정해놓은 테두리에서 정당한 방식으로 그에 맞서야 한다고 강요하는 부당한 권력을 고발합니다. 그들만의 참여민주주의, 그들만의 ‘법대로’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해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이성을 차리고 이해관계를 따지자고 얘기하는 것은 그 분노의 원인을 시정하려 하지 않는 폭력이다. 그 속에는 공감하지 않고 타자의 꿈을 배제하려는 폭력의 싹이 똬리를 틀고 있다. …사실 법이 정한 수단으로 말할수 없는 이에게 법대로 하라는 얘기는 폭력이다. 정당한 주장인데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그 수단을 잘못이라 규정하는 사회를 의심해야 한다. 왜 누군가 인정한 방식으로만 말해야 하는가’

둥글게 모여앉기
하승우는 ‘회의’야말로 정치이며, 지배계급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힘이라고 합니다. 둥글게 모여 앉아서, 생각을 나누고 규칙을 짜면서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강한 힘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더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무엇이라도 할수 있는 존재임을 격려하는 시공간이 ‘회의’라는 것이지요.

그는 다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를 묵묵히 실천하며 살때 우리는 이미 존엄한 존재이다. 주권이 지금 만들어진 현재를 살게 한다면, 존엄은 현재에 새로운 틈을 만들어 새로운 미래를 살게 한다’고. 그리고 ‘민중과 시민의 직접 행동은 머나먼 미래의 이상사회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존엄하게 살자는 몸부림이다. 정치의 가치인 존엄은 자본과 권력이 나눠줄수 있는 몫이 아니라 나와 우리가 노력할 몫’이라고 말입니다.

오석준  sjoh@jejudomin.co.kr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