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태평양이 시작되는 대양(大洋)의 시작점, 국토 최남단에 자리한 따뜻한 남쪽나라 서귀포에서도 올해는 봄이 더디 왔다고 합니다.

잦은 비와 차가운 날씨로 봄을 알리는 전령마저 대지를 박차고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봄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길가에는 개나리가 가득 피어났습니다.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계절은 세월을 비켜 갈 수는 없는 법인가 봅니다. 더욱이 겨우내 심한 바람을 맞으며 눈꽃에 시달리면서도 여린 푸른 잎을 피워내웠던 유채는 몇 번 봄비가 내린 다음 이제는 길가 밭 가득, 노란색의 유채 꽃의 향연(饗宴)으로 온 섬을 찬란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벚꽃 길로 유명한 전농로와 제주대학교 입구 길은 하늘 꽃으로 가득하고 바람에 날리는 꽃눈 사이로 이쁘게 재잘거리며 뛰노는 아이들과 연인들의 모습은 토실한 밤톨처럼 영글어가기만 하는 때입니다.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지요?

이 무렵, 낮은 오름 언덕배기에는 연신 허리를 굽혀 고사리를 꺾는 어머님들의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볕이 좋은 가시덤불 사이나 양지 바른 곳 큰 나무 아래에서 이슬만 먹고 자라는 고사리는 다른 봄풀들이 아직 자라나지 못할 때 나와 우리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줬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늘 나라 신선(神仙)들이 즐겨 먹는 채소라고 해 제사 때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제물(祭物)로 여겨 지금도 한라산 고사리의 인기는 최고라고 합니다.

봄비가 내려 이 땅에 나는 모든 곡물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는 곡우(穀雨) 무렵 다른 지방에서는 못자리를 준비하고, 튼실하고 좋은 것으로 마련해 둔 볍씨를 물에 담그어야 하는 때였습니다. 백곡이 잠을 깬다고 하는 이 때가 되면 농부들의 손놀림도 바쁘게 마련이었습니다.

또 곡우 무렵이 되면 흑산도 무렵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北上)을 해 충청남도 지방까지 올라오게 되는데,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곡우 무렵 잡은 조기를 ‘곡우사리’라 하여 살은 적지만 알이 많고 고기가 연하고 맛이 있기로 최고로 쳤다고 합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4월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청명 한식을 지나면서 조상을 모신 산도 둘러보았고, 일년 제물인 고사리도 꺾어 두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가족들의 안위와 풍요를 기원하며 최선을 다하며 한 해 농사에 매진했던 것처럼, 올 한 해 우리들이 계획하고 준비했던 많은 일들에 매진할 때입니다.

겨우내 추위와 심한 바람에 시달렸던 대지도 슬그머니 다가온 따사함에 무거운 겉옷을 벗어두고 초록의 풋풋함으로 단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척한 우리들의 노하우는 많은 일들에 있어 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자산임을 명심하고, 이 땅에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그 소중한 자산들을 공유하면서 도민 모두가 행복한 일등 제주를 건설하는데 매진해 보았으면 합니다.

천년의 향기를 담은 신(神)들의 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작지만 소망스런 그런 꿈을 누구라도 실현할 수 있는 우리 제주를 만들어 내었으면 합니다. 그런 제주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숨 가쁘게 달려보아야 할 때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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