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세상 읽기] 강정홍 / 언론인

▲ 강정홍

참 이상한 선거판이다. 너무 천박하다. ‘정책’은 찾아 볼 수 없고 ‘정치공세’만 판을 친다. 아무리 치열한 선거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양심이 만나는 영역일진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여전히 진흙탕 싸움이다. 정말 보기가 민망하다. 아니, 피곤하다.

선거에선 언제나 새로운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특히 이번 선거는 이른바 ‘2013년 체제’라고 불리는 새 시대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선거다. 낡은 과제가 소멸되고, 새 시대에 새로운 과제가 재구성돼야 한다면, 그 새로운 과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돼야 할 것인지, 정치권은 마땅히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고사하고, 보이는 건 ‘정치공세’뿐이다. 기껏해야 거리에서 악수나 하고 다닌다. 나만의 생각일까? 유권자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에선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선거의 실종’은 ‘이슈화의 실패’다. 물론 그 책임은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여론조사’가 선거보도의 전부인 양, 그 중점적 보도행태가 초래한 ‘기획의 빈곤’의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꾸만 선거행태가 천박하게 진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부한 얘기지만, 선거는 일종의 축제다. 축제는 ‘다함께 살자’는 놀이다. 그것은 대립되는 세력을 결합시키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모든 참가자를 거의 승자로 만든다. 그런데 왜 이런가. 모두가 ‘너 죽고 나 살자’는 판이다. 이미 축제의 정신은 고사하고, 최소한 염치마저 찾을 길 없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정치상황이 못마땅하여 혹 기권을 생각하는 유권자가 있음직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생각도 그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건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기권도 적극적인 정치의사 표시의 한 방법이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오늘의 정치상황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더욱 투표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한 표의 준엄함을….

투표는 유권자의 이성과 양심의 표현이다. 우리의 선택은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투표행위가 유권자의 신념에 근거한 구체적 행동임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정책지지도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선거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의 폭이 어느 정도이며, 그것이 곧바로 선거쟁점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졌는가 하는 평가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진다. 만일 이때 이번 선거판처럼 ‘정책공약’이 실종되어, ‘정책의 내용’이 주된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이른바 ‘정치공세’에 좌우되거나, 이른바 ‘지역감정’ 등이 그것에 개입될 경우, 우리는 선거를 통한 민주적 통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아니, 믿고자 한다. 선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자기 지배의 원리’가 이념에 불과할 뿐, 현실에 있어서는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됐다고 하더라도, 선거가 유권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민주적 통제의 가장 중요한 형태라는 것을…. 아무리 이번 선거판이 선거의 본래적 의미를 망쳐놓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결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나는 꿈을 꾸는가. 이성과 양심을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선거가 ‘다함께 사는 축제’가 되고, 더 나아가 정치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나는 변함없이 믿고자 한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것에 접근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선거를 통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벅찬 감정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가 그것을 담보한다.

투표를 하루 앞둔 오늘, 우리는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완전한 주인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일 모두 투표장에 나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주권을 행사할 때는 소홀히 했다가 나중에 가서 정치를 탓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오늘의 정치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성은 개량적 차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는 정치발전이 없다.
정말 한 표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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