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영배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 조영배

4월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온 땅 위에 생동하는 기운을 부추긴다. 회색빛에 가렸던 온갖 색깔들이 이제 ‘빛’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래서 4월은 축제준비로 들뜬 무대 뒤의 묘한 긴장과 기대감으로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다.

그러나 ‘제주의 4월’은 느린 걸음을 걷는다. 서둘러 ‘빛’ 잔치를 하기에는 제주의 4월에 덮인 회색빛 구름이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제주의 4월은 가슴 먹먹해지는 ‘숙연함’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4월이 된다. 그래서 제주의 4월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의 뒷자락에 머문다.

4월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조화로움이다. 4월은 힘찬 몸짓으로 땅 속에 숨겨져 있던 바로 그 조화로움을 땅 위로 밀어 올린다. 아직 만개한 꽃무더기가 너울대지 않아도, 그 화려한 꿈을 품어 안은 가슴이 미어 터질듯 하기 때문에 4월은 더욱 아름답다. 그것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요, 부활의 또 다른 이름이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4월은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를 즐길 준비를 한다.

그러나 ‘제주의 4월’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고통은 그야말로 부조화(不調和)이다. 제주의 4월은 힘찬 몸짓으로 생명의 기운을 밀어 올리려고 해도, 뒤엉켜버린 땅 위의 고통스러운 부조화(不調和)가 생명의 기운을 여전히 짓누른다. ‘가슴이 미어터질 듯한 꿈’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4월은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은 분노’를 가득 품고 있다. 그래서 제주의 4월은 깨어진 그릇조각에 발끝 베이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4월은 서툰 춤꾼과 같다. 그 서툰 춤이 도리어 우리 모두를 유쾌하게 한다.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흩어졌던 한 생명 한 생명들이 빛의 따스함에 그만 놀라, 춤 출 준비를 하기도 전에 어깨부터 연신 들썩거리는, ‘짜여진 안무 없는 춤판’을 시작하는 것이 4월이다. 그래서 4월의 생명들은 쭈빗쭈빗 거리지만, 그 몸짓 자체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제주의 4월’은 익숙한 행군과 같다. ‘척척’ 거리는 군경들의 너무나 질서정연한 발걸음 소리가 제주의 도처를 질리게 한다. 서로 다른 생명들이 서로 어울려 흐드러지게 춤판이나 벌일 줄 알았던 제주의 생명들은 ‘척척’거리는 획일성의 걸음소리를 듣고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리고는 끝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48년 4월의 ‘척척’ 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척척’ 들려오는 곳이 제주의 4월이다. 그래서 제주의 4월은 ‘들썩’ 거리던 춤사위가 어느 날 갑자기 ‘척척’ 거리는 소리에 질려 옴싹달싹 못하게 냉동된 채 그대로다.

2012년 제주의 4월은 이제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설레는 기대감이라는 빠른 걸음보다는 여전히 회색빛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무거운 발걸음들이, 조화로움이 주는 아름다움을 품은 가슴보다는 여전히 부조화(不調和)로 깨어진 아픔에 응어리져 있는 가슴들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다양한 생각들보다는 똑 같은 모양으로 팔을 휘젓도록 하는 독선이라는 단 하나의 생각이, 2012년 제주의 4월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4·3은 2012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자기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제주 4·3의 아픔을 끝내 외면한 것은 이 나라 지도자들의 사고수준을 의심케 하며,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저버리게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존중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힘으로 지방정부의 힘을 무력화시키려는 오늘의 실상은 4·3의 지속이나 마찬가지일 터이다. 거기에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기가 죽어버린’ 제주도정은 독재시절의 지방정부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2012년 제주의 4월은 강정의 4월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오로지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을 보면서, ‘척척’ 거리는 군화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처럼 4월의 걸음을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 붙잡아 두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냉동된 겨울 속에 그들의 사고의 지평을 스스로 영영 가두는 어리석은 자들일 것이다.

4월은 4월이어야 한다. 제주의 4월도 제주의 4월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 제주의 4월이 생동하는 걸음과 환호하는 아름다움과 서로 어울리는 춤판을 벌이는 진정한 4월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진정한 4월’은 그 아름다운 조화를 위해 애쓰는 자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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