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이명박 정권의 추한 ‘맨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불법사찰을 통해 한 기업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치인·언론인·공직자·기업인 등을 가릴것없이 전방위적인 불법사찰을 벌였고, 이를 덮기 위한 은폐와 증거인멸, 수사 축소, 회유 등 권력형 범죄의 전말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파업중인 KBS 기자들이 만드는 〈리셋 KBS 뉴스9〉이 지난 2008~2010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의 사찰문건 2600여건을 입수해 공개하면서 실체가 더욱 뚜렸해지고 있습니다. 이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했고,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불편한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사찰문건에는 ‘KBS, YTN, MBC 임원진 교체방향 보고’와 ‘KBS 최근 동향 보고’, ‘YTN 최근 동향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등 현 정권이 어떻게 언론을 장악했는지 담겨 있습니다. 특히 비고란에는 BH, 즉 청와대 하명으로 명시돼 ‘윗선’의 개입하에 방송사 사장·임원 교체가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반기를 들었던 정두언·정태근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이 철 전 철도공사 사장 등 참여정부 출신 고위 공무원·공기업 임원들, 은행장, 노조간부, 촛불집회 관련단체 등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불법사찰의 증거들이 넘쳐납니다.

이들 문건은 지난 2010년 검찰의 기업인 불법사찰 수사때 윤리지원관실 수사관 5명 가운데 1명의 컴퓨터와 USB 메모리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4명의 수사관의 자료가 모두 인멸돼버린 것을 감안하면 실제 사찰의 범위와 내용은 상상하기도 어렵지요. 그런데 검찰은 당시 김종익 전 KB한마음대표와 남경필 국회의원외에 다른 민간인의 사찰 증거는 없었다며 덮어버렸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이 사건으로 기소된 장진수 전 주무관이 재판과정에서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드러나 검찰의 재수사(이번에라도 제대로 할지는 의문이지만)가 이뤄지고 있지요.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내용과 제반 정황 등을 종합하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혹은 그 윗선에서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하드디스크를 영구파기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검찰에서 문제삼지 않기로 민정수석실에서 얘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검찰수사는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의 ‘윗선’ 등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총리실 직원 7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끝났고요.

재판과정에선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진실 은폐를 종용했고, 최 행정관은 “평생 먹여살리겠다. 캐시(현금)로 당겨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하면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총리실 국장을 통해 5000만원, 이 전 비서관이 2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장 전 주무관은 이와함께 청와대는 주심판사와 배석판사의 의견차이까지 알 만큼 재판과정 전체를 모니터링 했고, 벌금형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형량 조율도 시도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민간인 사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겠습니까. 지난해 1월 서울신문은 ‘국회 정무위 제기 민간인 내사 의혹 해명’ 문건을 입수, 지난 2008년 9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대표에 대한 사찰 결과를 동향보고 형식으로 민정수석실에 보고했고, 권재진 민정수석때는 검찰이 김 전 대표의 사법처리와 관련해 민정수식실을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의견을 묻자 기소의견을 제시했다고 보도한바 있습니다.

결국은 민간인 불법 사찰과 증거 인멸, 수사축소 등 일련의 권력형 범죄가 최소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개입하에 이뤄졌고, 검찰도 충실하게 뒷받침을 했다는 얘깁니다. 그 뒤에는 진짜 ‘몸통’이 있겠지요.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과연 몰랐는지 의문이지만, 진짜 몰랐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MB정권의 본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자, 권력을 빌려준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녹(祿)을 먹고 사는 자들이 권력기관을 동원해 ‘주인’인 국민들을 억압하며 민주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범죄행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해 철저히 단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의식과 주권자로서의 책임있는 행동이 민주주의를 살찌우는 밑거름인 것이지요. 열흘후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12월 대통령 선거때는 뽑아놓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해행위를 반복해선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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