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버니를 모두 빼앗아가고 내 자신의 삶마저 고통으로 만들어버린 트라우마다” 지난 28일 제주 4·3연구소가 마련한 ‘4·3증언 본풀이마당’에서 증언한 고광치씨의 한평생에 4·3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4·3 학살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음력 12월과 다음해 1월 할아버지·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토벌대에 무고하게 총살을 당한후 제주를 떠나 ‘빨갱이’라는 낙인속에 어려운 삶을 이어온 고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1992년 구좌읍 세화리에서 발견된 다랑쉬굴에서다. 토벌작전을 피해 동굴에 숨어지내다 희생된 무고한 양민 11명의 유해가 발견된 다랑쉬굴은 4·3의 진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무덤 하나라도 만들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당시 공안기관의 유·무형의 외압으로 화장해 유골을 바다에 뿌려야 했고, 다랑쉬굴은 입구가 막힌채 폐쇄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다랑쉬굴을 비롯한 4·3의 실상이 속속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지난 2000년 4·3특별법 제정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명됐고,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를 대신해 4·3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지난 2005년에는 화해·상생의 4·3특별법 정신을 토대로 다시는 이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동북아 교류협력의 장으로서 세계평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수 있도록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부·여당과 극우보수세력들은 4·3특별법 개악 시도와 헌법소원 등을 통한 ‘역사반란’을 멈추지 않았고, 4·3위령제에 대통령이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는 등 4·3폄훼와 왜곡으로 국가추모일 제정과 추가진상규명 등 후속과제들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내세운 해군기지 공사 강행으로 무참하게 파괴되는 강정 구럼비바위의 비극도 4·3과 맞닿아 있다. 이승만정권이 쳐놓은 이데올리기의 덫에 최소 3만명이 넘는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국가공권력에 희생됐듯이, 평화·인권, 환경·생명의 가치와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도민·국민들이 보수정권의 무지막지한 공권력에 유린되고 있다.

4·3이 그러했듯이,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 세상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아무리 색깔을 씌워도, 폭약으로 부수고 또 부순다해도 강정 구럼비는 평화와 인권의 성지로 거듭나게 될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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