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구럼비바위가 속절없이 부서지고 있다. 지난 23일 국무총리실과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시뮬레이션 재검증에 합의하면서 제주도지방정부가 걸었던 공사중단에 대한 기대는 아랑곳없이 해군이 구럼비 발파에 속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은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사전 예고때 이뤄진 공사 일시중지 요구를 깔아뭉갠데 이어 정부와 제주도지방정부간 시뮬레이션 재검증 합의도 무시하고 공사강행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는 29일 공사정지 명령을 위한 3차 청문과 15만t급 크루즈선이 안전하게 드나들수 있게 설계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 재검증 1차회의가 예정된 상황에서 공사가 강행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성이 문제다
제주도가 공유수면매립공사 정지명령을 위한 청문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현 설계로는 15만t급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불어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정위원회의 검증 결과를 토대로 강정항 서측 돌제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하도록 결정한 것이 실시설계 변경사유에 해당돼 공사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0일 1차 청문회에서도 제주도가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군은 막무가내다.
지난 22일 2차 청문회에선 제주도가 청문에 임박해 새로운 질문을 제시해 성실한 의견 진술과 증거 제시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해군의 요구에 따라 이렇다할 논의도 못하고 29일로 연기됐다. 청문회가 빨리 마무리되고 공사정지 명령이 내려지길 기대했던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선 제주도와 해군이 시간만 끌면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해 되돌릴수 없게 만들기 위한 ‘꼼수’로 볼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정부·해군과 제주도가 과연 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제주도의회와 국회 해군기지 소위원회 등을 통해 강정항 설계가 15만t급 크루즈선 2척 동시 접안은 고사하고 대형군함도 입출항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국방부가 단독으로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 문제가 없다며 해군기지 공사 강행에 나서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해 11월 12~12월 2일까지 실시한 단독 시뮬레이션은 고마력 예인선 배치와 일부 항만구조물 재배치, 설계풍속(7.7m에서 14m)과 횡풍압면적(8584.8㎡에서 1만3223.8㎡) 변경 적용 등 지난 2월 14일 국무총리실 기술검증위가 검토결과에서 제시한 조건들과 일치한다. 때문에 기술검증위 검토보고서는 국방부 시뮬레이션에 ‘짜맞추기’한 것밖에 안된다는 비판이 나올수 밖에 없다.
제주도가 국가정책조정희의의 공사강행 결정에 즉각 수용불가 입장을 밝히고 객관적인 재검증을 요구한 것도 국방부 시뮬레이션과 기술검증위 검토보고서의 객관성·공정성·신뢰성에 문제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는 15만t급 크루즈선이 안전하게 드나드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건설해 안보사업을 시행하고, 주변지역발전계획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보해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제주도의 ‘윈 윈’ 해법의 근간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증을 요구했던 제주도가 불쑥 국방부 시뮬레이션 결과를 재검증하는 것으로 국무총리실과 합의한 것도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강정마을회와 군사기지저지 범도민대책위원회가 제주도가 제안한 검증팀 참여를 즉각 거부하고 정부와의 타협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공사중단이 먼저다
제주도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청문회 진행과 시뮬레이션 재검증 합의에도 아랑곳없이 강행되는 해군기지 공사를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중단시키는 것이다. 공사중단이 없이 이뤄지는 청문·재검증 등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시간끌기용으로 비쳐질수 밖에 없다.
강정마을회와 범대위, 해군기지 읍·면·동 대책위원회 등이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했듯이, 우근민 도지사는 더이상 결단을 머뭇거리면 안된다. 최대한 빠른 시점에 공사정지 명령과 공유수면매립면허 취소,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 등을 통해 해군기지 강행으로 무너진 제주도지방정부와 도민들의 자존심을 되살려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