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정부가 제주도 지방정부와 도민들에게 또 엄포를 놓았습니다.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적 절차, 평화·인권·환경이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를 정치적 이해관계와 외부세력에 의한 소모적 갈등 확산 원인으로 규정하고,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지요.

제주도가 요구한 공사 일시 중지는 물론 강정항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설계 재검증 요구도 단호하게 무시하고, 제주도가 공유수면매립공사 중지명령은 내려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난 16일 국방부·행정안전부·환경부·해군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제주를 찾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의 얘기는 한마디로 ‘닥치고 순종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것입니다. 전략적 요충지역인 남방해역을 보호하고 제주발전을 위해 해군기지를 만드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는 것이지요. ‘도민들께 심려를 끼쳐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거나, ‘앞으로 대화와 소통을 더 넓고 깊게 해 나갈것’이라는 등의 얘기는 ‘립서비스’고,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할 테니 찍소리 말라는 ‘선전포고’입니다.

여기에 해군기지 갈등의 원인 제공자인 국방부와 해군을 비롯한 정부의 잘못과 경찰 공권력을 동원한 인권침해는 덮어놓고 정치적 이해나 외부세력의 불법행위로 제주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기가 막힙니다. 1050명의 강정마을 유권자 가운데 고작 87명의 박수로 이뤄진 입지선정에서부터 절대보전지역 해제와 환경영향평가 이전에 이뤄진 국방군사시설계획 승인, 부실덩어리 환경영향평가와 밥먹듯 이뤄진 협의내용 미이행, 제주도지사의 공유수면매립면허 취소 사전예고와 공사중지 요구도 무시한 구럼비 발파 강행 등 중요한 문제들을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15만t급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은 고사하고 대형 군함도 입출항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난 강정항 설계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하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핵심문제임에도 국방부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문제없다고만 합니다. 재검증을 하려면 최소 7개월이 걸리고 공사가 중단되니 안되고, 제주도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와서 국방부 시뮬레이션 내용을 검증하겠다면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것이 고작입니다.

강정 해군기지가 진정으로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지요. ‘이어도가 중국의 관할 해역’이라고 했다는 한 중국관리의 말을 빌미로 ‘중국위협론’을 들고 나와 해군기지 공사 강행 명분으로 삼는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언론들의 행태는 ‘촌스러움의 극치’이자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도박입니다. 이어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도, 영해도 아닌 중국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지역에 있는 수중암초입니다. 중국 외교부도 이어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양국간 담판, 즉 외교적 협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임을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지요.

이지스체계로 중무장한 구축함을 비롯한 기동전단과 잠수함전대·육상지원전대 등이 들어서는 해군기지는 미국의 중국포위전략 편입으로 제주가 동아시아 신냉전의 ‘화약고’로 전락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할 위험은 세계 유력언론들과 세계적 석학들도 경고해온지 오랩니다. 남방해역 해상교통로 보호는 해양경찰의 기본업무이고, 해양자원 확보도 주변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요. 게다가 화순항에 7000억원을 들여 건설되는 해경 전용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활용하면 유사시를 대비할수 있음에도, 1조원의 국가예산을 낭비하면서 대규모 해군기지를 굳이 만들려는 건 국가를 넘나드는 군산토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structive complex)의 이해관계와 국방부·해군의 ‘몸집불리기 욕심’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우근민 도지사는 아직도 정부에도 먹혀들지 않는 ‘윈 윈 해법’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지방정부와 도민들의 자존이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의 겁박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공사 일시 보류와 강정항 시뮬레이션 재검증 요청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말입니다. 문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기력하게 대처해온 제주지역 국회의원들도 정부·해군을 비난하는 성명 따위로 ‘면피’에 급급하면서 4월 11일 치러지는 선거때 다시 뽑아달라 하고 있지요. 도의회도 강정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과 야당 의원들간 입씨름만 하고 있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국가의 폭력에 둔감한채 순응만 한다면 땅에 떨어지고 짓밟힌 제주도와 도민의 자존은 누가 일으켜 세워야 하겠습니까.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