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종 / 문화활동가

▲ 지금종

‘지역문화가 살아야 제주가 산다’는 말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 활성화의 필요성을 깊이 성찰해보면 이런 수사가 결코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회적 과제가 어찌 지역문화 활성화뿐이겠는가. 경제도 살리고, 사회 양극화와 지역 격차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등 무수한 과제가 중첩돼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역문화가 중요하다. 즉 앞에 열거한 사회적 과제들을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발전을 바라보는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질과 양 모두에서 날로 커지고 있고, 문화격차는 과거 지식격차처럼 사회 양극화의 기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사회발전은 경제발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문화발전·인간발전이 병행돼야 가능하다. 일찍이 유네스코에서는 ‘우리들의 창조적 다양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문화는 발전전략의 핵심적 요소이며 지역문화야 말로 자생력에 의한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는 지구방화(Glocalization)는 지역과 세계, 지역과 지역의 직접적 소통과 교류를 촉진함으로써‘지역’과‘문화’의 가치와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산업·문화도시·어메니티 플랜 등 문화와 관련된 화두가 주목받는 데서 이러한 흐름이 대세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구조적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 주5일 근무제 실시로 인한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출산의 감소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고령화 사회 진입 등 우리 사회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문화예술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성과 창의성이 경제적 가치 창출에 중요한 능력이 될 문화경제가 중심이 되는 지식정보사회에 걸맞는 인재의 양성과 문화예술을 통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새로운 사회적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용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인프라 구축과 접근성 제고, 예술창작자들의 창작환경 개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활성화, 문화의 사회통합기능 강화, 산업과의 연계 활성화 등 수많은 문화적 과제가 놓여 있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문화행정시스템과 문화예술 지원체계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목표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 즉 시민의 창조성, 자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문화적 전략 마련이 필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관점으로 지역을 사고하고, 현실에 개입해 재구조화하는 실천방식은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제도적 장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렇듯 지역문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환경은 매우 좋지 못하다.

제주도의 경우도 시설은 좀 늘었으나 지역문화발전의 주체가 될 인력은 모자라고 재원, 프로그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지역 간 문화격차는 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문화정책은 미미하다. 한마디로 심각한 문화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한 창조적 인재들을 길러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문화행정은 문화마인드가 부족하거나 문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고, 의회는 이를 견제할 능력이나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생존에 급급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거시적 활동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렇듯 지역문화에 대한 인식부족, 시대에 뒤떨어지는 정책영역 설정, 정책의 생산-유통-소비시스템 등 정책과정의 비민주성, 정책 실행을 위한 정책기반의 취약, 각 정책주체들의 역할분담 및 협력체계 미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는 것이 제주 지역문화의 현주소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지역문화를 살리기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지역문화진흥 조례 제정을 비롯해 제주도 문화행정의 혁신, 지역민의 문화역량 강화라는 다양한 지역문화과제를 총체적으로 추동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혁신을 위해서라도 우선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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