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7월 1일부터 새롭게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지역마다 새로운 정책들을 구체화하고 추진계획을 짜느라 바쁘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당선자들이 취임하고 보니 일을 추진할 돈이 없다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성남시장이 전임 시장때 벌인 무리한 개발사업으로 인해 당장 부채를 상환하기가 어렵다며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가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에도 이런 지방재정의 위기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주민이 직접 챙기는 지역 살림살이
 

제주특별자치도의 채무도 8200억원을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재정 전망도 밝지 못하다. 재정수입은 늘어나지 않는데도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재정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불요불급한 예산낭비를 줄이고 예산의 효율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사안일과 ‘정치적 나눠먹기’에 익숙한 행정과 정치권에 제주의 살림살이를 맡겨두어서는 현재 직면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수박겉핥기 식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도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재정이 파탄위기에 있던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시에서 1988년에 처음 시작된 혁신적인 제도이다. 이 제도는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과 집행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예산의 투명성, 책임성,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부패와 부조리를 예방하려고 하는 제도이다.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시의 삶의 질은 많이 개선되었다. 예산낭비가 줄어들고 주민생활에 필요한 사업들에 예산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성과를 보이자,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브라질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곳곳의 도시들로 확산되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도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하고 있다.
 

건강한 예산 편성, ‘특별자치’의 기반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소개가 되었고, 2003년에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처음 주민참여예산제가 시도되었다. 그리고 울산 동구, 대전 대덕구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들로 속속 확산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상당수의 지방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이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들은 취임한 이후에 주민참여예산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유일하게 벗어나 있는 곳이 제주특별자치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자치도법에 의해 주민참여예산제를 반드시 도입하게 되어 있는 곳이다. 육지부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선택사항이지만,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의무사항으로 한 것이다. 다만, 주민참여예산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도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육지부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속속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언제쯤 이 제도가 실시될 수 있을 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인 것이다.

이는 지난 4년간 도집행부와 도의회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률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 방기하고 있었던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새로 당선된 도지사와 도의회로 넘어갔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실시해서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것은 제주특별자치도가 ‘특별자치’를 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법률에 의해 강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숙제도 풀지 못하면서 중앙정부에 가서 손을 벌린다면, 누가 제주특별자치도를 믿으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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