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공직후보 공천은 그 정당의 정체성과 신뢰성을 측정할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 특히 이번 4·11 국회의원 총선후보 공천은 ‘안철수 현상’을 통해 나타난 기존 정치권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각 정당들이 얼마나 겸허히 수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거대 여·야정당의 19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새누리당이 후보공천을 놓고 친이계니, 친박계니 하며 18대 공천때와 비슷한 싸움을 벌이고, 제주 4·3을 폭동으로 매도한 이영조 전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전략공천하는 등의 행태가 그러하다. 민주통합당도 친노의 부활이니 뭐니 잡음이 터져나오고 비리에 연루된 후보 공천으로 국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이런 행태로 폭넓은 참여민주주의와 기회·경쟁의 공정성, 분배·재분배의 공평성 등 시민권력의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국회가 수용해낼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삶의 현장에 함께 하며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생활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제대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본다.

기득권 나눠먹기
제주지역 3개 선거구 국회의원 후보 공천만 해도 전·현직 의원과 교수, 서울대출신 법조인 등 ‘엘리트’ 일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인물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를 외면하고 ‘기득권 나눠먹기’에 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삶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해결해주는 생활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를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의회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경험을 쌓거나, 도민들과 삶의 현장을 함께 해온 새로운 인물들의 국회 진출이 예선에서부터 기득권의 벽에 막히고, 선순환적인 정치지도자 충원 기능도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제주시 갑선거구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1·2위를 달려온 장동훈 전 도의원을 뚜렸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채 배제시키고 친박계 제주수장격인 현경대 전 의원과 강문원 변호사를 여론조사 경선후보로 결정했다. 지난 18대 총선때 현 전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강창일 후보가 어부지리(漁夫之利)로 당선됐음을 감안하면 공정성·투명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제주시 을 선거구와 서귀포시 선거구는 부상일 전 제주도당위원장과 강지용 제주대교수를 단수공천해 다른 예비후보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제주시 을 선거구는 김우남 현역의원이 오영훈 전 도의원과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된 반면 제주시 갑·서귀포시 선거구는 강창일·김재윤 현역의원을 단수공천했다가 통합진보당 예비후보들과 경선을 치르기로 하는 등 우와좌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귀포시 선거구에서 김 의원과 치열한 후보 경쟁을 벌였던 문대림 도의회 의장과 고창후 전 서귀포시장이 탈당, 여론 조사를 통해 문 전의장을 무소속 후보로 단일화하는등 파장을 일으켜 후보공천의 공정성·투명성에 대한 의심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유권자들이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기초적인 자료도 제공하지 않고 인지도 조사나 다름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가의 보도’처럼 국회의원 공천에 활용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예비후보들의 신상정보와 경력, 가치관과 정치관, 정책공약 등에 대한 상세한 자료와 더불어 공개토론회 등을 통한 검증절차를 거친 후에 유권자들의 투표로 후보를 결정해야 정당성과 경쟁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주인이다
정치권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주인’인 유권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권의 구태를 심판하고 바른길로 이끄는 것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본다.

‘주인’의 책임을 다하자면 지연·혈연·학연 등 고질적인 연고주의나 개인적인 이해관계 등에서 벗어나 후보들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진정한 심부름꾼을 선택해야 한다. 해군기지·제주신공항을 비롯한 지역 현안들과 선거공약 이행 여부 등 현역의원들의 역할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생활정치시대는 유권자들 스스로 ‘표’를 통해 냉철하게 선택할때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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