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이명박 정부 임기말에 벌어지는 강정의 ‘도가니’는 전근대적인 왕조시대나 냉전시대의 잔재인 국가주의의 망령입니다. 21세기 민주사회 ‘시민권력의 시대’로 가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는 몸부림이지요. 해서 그 몸부림은 무지막지하고 오만방자하며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들만의’ 국가와 국가이익, ‘닥치고 충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주권자이자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를 국가인양 착각하는 극우보수정권, 국가를 넘나드는 군산토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structive complex), 맹목적인 ‘배후세력’들이 ‘그들만의 나라’를 지키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지요.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적 절차, 평화와 인권, 환경과 생명이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맞서 해군기지 공사 강행에 나선 국방부와 해군·시공업체 등도 국가주의라는 ‘괴물’이 벌인 장기판의 말에 불과합니다.

‘그들만의’ 궤변
국방부와 해군은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도 노골적으로 벗어던지고 애초부터 해군기지였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국가안보를 내세운 해군기지가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협할 위험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가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Monde Diplomatque)’ 를 비롯한 유럽·미국의 유력언론들과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 평화운동가들이 오래전부터 경고해왔지요.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G2’로 부상한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편입됨으로써, 제주가 동아시아 신냉전의 ‘화약고’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대한민국 영토가 아닌 수중암초,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미합의 수역인 이어도에 한국 또는 미국의 해군함정이 출동했을때 중국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한 동아시아 신냉전 격화, 그 중심에선 제주와 대한민국의 안보에 닥칠 위협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남방해역 해상교통로 보호는 해양경찰의 기본업무이고, 해양자원 확보도 주변국들과의 협상 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지 군함으로 무력시위에 나선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지요. 게다가 화순항에 7000억원을 들여 건설되는 해경 전용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활용해서 유사시를 대비하는 건설적인 대안이 있음에도, 1조원의 국가예산을 낭비하면서 대규모 해군기지를 굳이 만들려는 건 국방부·해군의 ‘몸집불리기 욕심’으로 불확실한 국가안보 위협을 확실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도박’입니다.

해군기지 문제를 전임정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생태계 및 구럼비바위 보존 등의 환경문제와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 크루즈선 입출항 문제 등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정부와 국방부·해군의 ‘합창’도 현정부의 수준과 품격을 말해줍니다. 노무현정부때 국회가 예산을 승인한 것은 대규모 해군기지가 아니라 ‘15만t급 크루즈선이 드나드는 민항을 기본으로, 해군과 해경이 유사시 정박해 물자 등을 보급받을수 있는 민군복합형 기항지’입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하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뒤집고,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강정항 설계 재검증을 외면하고 해군기지만을 강행하면서 남 탓이라니요.

1050명의 강정마을 유권자 가운데 고작 87명의 박수로 이뤄진 입지선정과 실제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반대 680명, 찬성 36명) 결정이 난 것은 눈을 감고 ‘주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법원에서 잘못이 확인된 절대보전지역 해제와 환경영향평가 이전에 이뤄진 국방·군사시설 계획 승인 문제 등을 모른척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들이 누락되는 등 부실덩어리 환경영향평가와 밥먹듯 이뤄진 협의내용 미이행, 침사지·가배수로 공사를 엉터리로 해놓고 제주도지사의 공유수면매립공사 정지 사전예고와 공사중지 요구도 무시하고 발파작업을 강행해 구럼비바위 해안을 흙탕물로 오염시키는 행태는 또 어떻습니까.

시민권력의 시대로
극심한 불통과 민주주의적 절차 무시, 생명·평화·환경의 가치 훼손, 강정마을을 점령한 공권력의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 등 국가주의의 망령은 시민권력의 시대로 가기 위한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정권교체만으로 진정한 시민권력의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역사의 경험이 주는 교훈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 노릇을 하려면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에 터잡은 공정한 사회가 실현되고, 평화·인권·환경·생명의 가치들이 살아숨쉴수 있게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부당한 권력의 횡포와 그에 기생하는 세력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행동해야 할때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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