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할 뿐이다. 평화와 환경, 인권과 생명이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도,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제주도지방정부와 제주도민들의 자존심도 국방부와 해군, 경찰 공권력에 철저하게 유린됐다.

국가안보를 빙자한 대규모 해군기지를 만들어 몸집을 불리는데만 눈이 먼 국방부와 해군이 또다시 강정마을을 유린하고 구럼비바위 발파를 강행했다. 이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과 제주도지방정부·도의회까지 무시하고 깔아뭉갠 오만방자한 행태로 민주주의 역사를 퇴행시킨 ‘범죄’와 다를바 없다고 본다. 더불어 국민들과의 소통에 담에 쌓은 이명박 정부와 역사의 고비마다 독재정권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군과 경찰의 ‘본색’을 거듭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제주의 통곡소리
정부가 지정·선포한 세계 평화의 섬 제주는 육지경찰 500여명을 비롯해 1500여명을 동원한 무자비한 경찰의 공권력앞에 무너졌다. 경찰은 구럼비바위 발파를 막기위해 저항하던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평화활동가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전직 국회의원·현직 도의원을 가릴것없이 강제연행하고 오전 11시20분께 구럼바바위 인근에서 1차발파를 강행했다.

더욱이 해군은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우근민 도지사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를 사전예고하고 공사를 일시중지할 것을 공식 요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발파를 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천정배 국회의원,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등 현직 국회의원들까지 나섰지만 경찰 공권력을 업은 해군은 그야말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해군은 이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은 물론 국회와 정치권, 제주도지방정부와 도의회도 철저히 무시하고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폭파는 시공업체가 하는 것으로 해군과는 상관이 없고, 화약류 사용승인도 시공업체가 한 것’이라는 해군의 주장은 ‘수준’을 스스로 드러낸 한편의 코미디나 다름없다.

설촌이래 400여년을 평화롭게 오손도손 이어온 강정마을은 5년여를 끌어온 해군기지 문제로 공동체가 와해된것도 모자라 지난해 9월에 이어 또다시 무지막지한 공권력에 점령당한채 계엄령 상태를 방불케하고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과 평화·환경의 가치를 지키려는 강정마을과 주민들을 이처럼 짓밟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강정은 잠들지 않는다. 그 어떤 물리적 폭압을 동원해도 강정의 가치와 정신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숨쉰다.

강정을 사랑하고 구럼비를 지키려는 국민들, 공권력의 폭압에 분노한 민심이 강정으로 달려오고 있다. 역사의 고비마다 바른 길로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민의 힘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지사, 강정으로 가라
우근민 도지사는 이제 강정으로 가라. 강정항 크루즈선 입출항 재검증 요구가 무시되고,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를 사전예고하고 공사 일시중지를 요구했음에도 해군이 구럼비발파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지사가 바라봐야 할것은 국방부·해군을 비롯한 정부가 아니라 강정마을 주민들과 도민들이다.

현 상황에서 국방부·해군에 공문을 보내고 어쩌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당장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실질적인 조치가 먼저다. ‘주민들편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더라도, 당장 강정으로 달려가 공권력에 유린당한 주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제주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면서 더 이상의 공사강행을 몸으로라도 막아내야 한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발표 따위로 강정마을과 제주도, 제주도민들이 국가공권력에 유린당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 5년여를 끌어온 강정해군기지 문제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게 된데는 제주도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이 너무나 크고, 야당의 한계 어쩌고 하는 것은 변명거리가 안된다.

역사는 오늘 강정의 피울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 죄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4·11 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는 현 정권과 국방부·해군에 대한 심판의 장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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