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편집국장

▲ 오석준

설마 우근민 도정이 ‘크루즈선박 입출항에 문제가 없으니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겠지요. 15만t급 크루즈선이 안전하게 드나들수 있는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뮬레이션을 다시 하자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한 정부의 주문을 군말없이 받아들인다는 건 말이 안될테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면 엄단하겠다는 서슬퍼런 정부에 반기를 들어 강정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취소해 공사를 중단시키는 등 ‘맞짱’을 뜨는 것도 쉽지않은 선택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제주도 지방정부가 무엇이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해군은 정부의 입장 발표가 나오자마자 강정 해상 준설작업을 재개하고 구럼비바위를 절단내기 위해 발파 허가 신청을 내는 등 말뚝을 박겠다고 서두르고 있고,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해군기지 반대단체 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겠다고 합니다. 지난 1일 오후 강정 포구에선 평화활동가 한 분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게 더이상 없다”고 절규하며 투신하려다 주위에서 간신히 뜯어말리고 공권력 앞에 초라한 무력감에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하지요. ‘제2의 용산 참사’ 혹은 ‘제2의 4·3’이 단지 걱정에 그치지 않고 불행한 사태로 번질수 있다는 얘깁니다.

어렵게 꼬여서 풀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해법은 ‘기본’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해군기지 문제도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접근해야 하겠지요.
정부가 해군기지 강행 명분으로 삼은 것은, 국방부가 한국해양대학교에 맡겨 시뮬레이션을 다시해보니 강정항에 크루즈선박이 입출항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한 시뮬레이션 조건은 고마력 예인선 배치와 일부 항만구조물 재배치, 설계풍속(7.7m에서 14m)과 횡풍압면적(8584.8㎡에서 1만3223.8㎡) 변경적용 등 지난달 14일 국무총리실 기술검증위원회가 검토결과에서 제시한 조건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은 기술검증위 검토결과가 국방부 시뮬레이션에 짜맞추기 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쪽에 기울어진 행보를 보여온 제주도정마저 즉각 수용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국방부 시뮬레이션의 공정성·객관성 등을 도무지 신뢰할수 없고, 문제를 제기한 입장에서 면이 안서는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정부의 해군기지 공사 강행은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이자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스스로 뒤집는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뮬레이션 재실시’라는 제주도 지방정부의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한 것은, 최첨단 이지스함을 비롯한 기동전단과 잠수함전대·육상지원전대 등이 들어서는 대규모 해군기지로 몸집을 불리려는 국방부·해군의 욕심이 4·11 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 등 정치지형의 변화로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는 다급함 때문이지요. 때문에 15만t급 크루즈선이 이용할수 있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해 국가 안보 사업을 하고, 주변지역 발전계획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통해 지역발전도 도모한다는 우근민 지사의 ‘윈 윈’ 해법도 근간이 무너지게 된것이고요.

입지선정에서부터 절대보전지역 해제와 환경영향평가 전에 이뤄진 국방·국사시설계획 승인 등 불·탈법적인 추진 절차와 과정, 밥먹듯 이뤄진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미이행,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평화활동가 등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집행과 인권 유린…. 해군기지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도가니’입니다. 동북아 교류협력의 거점 국제자유도시이자 세계평화의 섬, 특별자치도를 관통하는 평화와 상생, 인권과 환경이라는 가치들도 여기에 갇혀버렸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자발적인 동의와 계획에서부터 절차와 과정, 결과에 이르기까지 정당성을 갖춰야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최소한의 상식도 실종된지 오랩니다.

이젠 우근민 도정이 말할 차례입니다. 그 선택은 ‘막장 불통’으로 주민소환투표까지 갔던 전임 김태환 도정과 같으냐, 다르냐를 판별할 기준이기도 합니다. 우 도정이 당장 해야 할 일은 이유불문하고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막는 것입니다. 정부가 ‘윈 윈 해법’의 근간인 실질적인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을 거부한 이상 공유수면매립허가 취소 등 공사중단에 필요한 조치를 통해 강단있게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부 예산이나 정책사업 지원 같은 것들을 좀 안받으면 어떻습니까. 실종된 최소한의 상식과 가치, 제주도민과 제주도지방정부의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아 달라는 것이지요. “우근민 도정과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던 취임사가 진정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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