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곡학아세(曲學阿世)라 …. 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이니, 학문의 정도(正道)나 학자적 양심 따위는 내팽개치고 권력에 줄을 대어 일신의 영달을 누리려함을 말하겠지요.

이 말은 중국 한나라 경제(景帝)때 90세의 나이로 조정에 등용된 원고라는 학자가 공손홍이라는 젊은 학자에게 올바른 학문의 길을 당부했다는 설화에서 전해진다고 합니다. ‘지금은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것이야. 자네는 학문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을 세상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네’라고 말입니다. 원고를 깔보고 무시했던 공손홍은 이에 감복해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고 하지요.

지난 23일 제주관광학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에 대해 “소모적 논쟁을 떠나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전국민적 참여로 이룩한 절호의 기회가 헛되지 않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유익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정운찬 전 7대경관 범국민추진위원장과 우근민 도지사가 했던 얘기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요. 논쟁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지만, 이들이 과연 공신력도 실체도 의심스러운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개인적으로 만든 사기업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NOWC)의 돈벌이 캠페인에 공무원 투표 행정전화비를 비롯해 300억원이 훨씬 넘는 도민들의 혈세를 탕진한 7대경관의 진실을 학자의 눈으로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 봤는지 궁금해집니다.

제주관광학회장이라는 사람은 “유네스코는 유엔 산하 여러 기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것은 권위가 있고, 그외 기관이 선정한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수 없다”며 “유네스코 자체에 대해 권위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했다지요. 게다가 “세계7대자연경관은 전세계에서 7곳만을 말하는 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트리플크라운’보다는 홍보효과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전세계 국가들과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보다 ‘듣보잡’ 같은 N7W재단이나 NOWC가 권위와 공신력이 있는 것인양 호도하는 얘기를 서슴없이 할수 있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숨이 턱 막힙니다. 명색이 학자라면 최소한의 논리와 근거를 토대로 이러니 저러니 하는게 기본이겠지요. 스위스 현지 관광청이나 시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N7W재단과 NOWC의 실체와 7대경관 캠페인의 효용성, 제주발전연구원이 신뢰할만한 근거도 없이 지난 2007년 NOWC가 벌였던 ‘세계 신 7대불가사의’ 선정지역 관광객이 몇% 늘었다는 식의 주장을 토대로 추산한 연간 6300억~1조3000억원의 경제파급효과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등을 따져보는게 먼저일텐데 말입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하지요. 7대경관 문제를 덮고가자는 제주관광학회의 기자회견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때 특정 도지사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교수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제주사회 지식인집단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못해 측은해지기까지 합니다.

박정희의 3선개헌과 10월유신, 5공 군부독재정권 등 역사의 퇴행기마다 권력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을 꾀한 지식인들이 줄을 섰지만, 역사적 심판과 단죄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지요. 그러다보니 중앙·지방을 막론하고 권력의 단맛을 보려는 지식인들이 넘쳐나는게 현실입니다.

지난해 환경운동연합과 전문가·파워블로거·시민 등으로 구성된 ‘MB씨 비리수첩 제작단’이 두차례에 걸쳐 4대강 사업에 적극 찬동한 전문가·공직자·언론인 등 259명의 명단을 발표한바 있습니다. 이는 진실을 왜곡해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고 후세에 경계로 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맹자는 사람의 선한 4가지 본성인 측은지심(惻隱之沁 =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沁 =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할줄 아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도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줄 모르고 합리화는데 익숙한 사회, 옳지 못함을 보고도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덮자는 사회, 진실이 불편한 사회에 어찌 미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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