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15만t급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에서 내려진 실질적인 결론은 지금의 강정항 설계로는 크루즈선박 입출항이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와 국회 해군기지 소위 등에서 드러난대로 ‘무늬만’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일뿐 군함용 설계임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검증위는 △설계풍속 △횡풍압 △항로법선(法線) △선박시뮬레이션 운항난이도 등 4가지 항목에 걸친 기술검증을 통해 강정항 설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7노트(14m/s)를 적용해야 할 설계풍속을 15노트(7m/s), 1만3223.8㎡를 적용해야 할 횡풍압면적도 8584.8㎡를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항로법선과 선박시뮬레이션 운항난이도 검토결과도 15만t급 크루즈선박 입출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가 드러난 이상 최소한 강정항에 대한 전면적인 재설계가 이뤄져야 하는게 상식이다. 검증위는 그럼에도 항만설계 기준상의 선회장 규모 축소 필요성을 운운하는가 하면 ‘현 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와 고마력 예인선 배치를 반영, 선박의 통항 안정성 및 접안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선박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는 검토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검증위가 국방부·해군의 눈치를 보지않고선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국방부·해군의 ‘꼼수’
기술검증을 통해 강정항 설계 문제가 재확인된데 대한 국방부와 해군의 행태는 그들의 수준과 제주도민·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증위가 다각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음에도 보고서에 설계오류라고 명시적으로 쓰여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정항 설계에는 오류가 없으며, 전면적인 설계변경이나 공사중단을 할수 없다는 얘기다.

국방부와 해군이 내놓은 공식입장은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설계에 오류는 없으며, 검증위의 건의대로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 등으로 보완해 선박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던 소가 웃고도 남을 이런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은 국방부·해군은 물론 대한민국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제주도민과 국민들을 우습게 아는 행태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검증위가 내린 실질적인 결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언론의 오보 운운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국방부·해군의 자세는 입지선정과정에서부터 추진절차의 문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와 밥먹듯 이뤄진 협의내용 미이행 등 그동안의 행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국방부와 해군의 수준이 여기까지라는 얘기다.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강정마을회, 각 정당과 제주출신 국회의원, 4·11총선 예비후보들을 비롯한 정치권 등에서 국방부와 해군을 성토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국방부의 입장을 밝히는 브리핑에 검증위 위원장을 참석시킨 점도 중립성·공정성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한 대목이다.

제주도정을 주목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기지 문제의 향배는 강정항 설계 기술검증 결과에 대해 제주도정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 본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아니면 받아들일수 없다고 천명해온 제주도정으로선 문제가 확인된만큼 공사중단 요구 등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된것이다.

정부와의 관계를 무시할수 없는 제주도정의 입장에서 공사중단 요구나 강정 공유수면매립허가 취소 등의 ‘카드’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해군의 입장을 따라 공사가 강행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윈 윈 해법’의 근간을 흔들고 도민·국민들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으로 엄청난 반발과 함께 ‘제2의 주민소환운동’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상식에 맞는 선택일 것이다. 해군기지가 국책사업이라해도 명확하게 드러난 근거를 토대로 공유수면매립허가권 등을 활용해 공사중단을 요구한다면 국방부·해군이 무조건 공사를 강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절차·과정상의 숱한 문제에다 엉터리 설계 사실까지 확인된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도민·평화활동가 등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제주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은 더이상 반복돼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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