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편집국장

▲ 오석준

“우리는 몰명진 사람이 아닙니다. 바보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남과 다툼을 싫어해서 조용히 해결하려 하고, 남의 자그마한 잘못은 눈감아주는 미덕을 가진 마음결 고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감내하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혜로운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요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그런 미덕과 마음결과 지혜를 역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약이란 생각으로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매도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습니다. …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 속 깊이 자리잡은 채 칭칭 뽀시게 아픈 고름은 고약을 발라 뽑아내던지 손으로 짜내야만 합니다. 제 시간에 고름을 짜내지 않았다가는 단지를 붙여서 뽑아내야 하거나 결국 수술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흉터를 남겨야 합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둘러싼 온갖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주민감사 청구에 나선 제주도민 이성준씨가 도민들에게 호소하는 서명 취지문에 담긴 내용입니다. 도지사를 정점으로 한 ‘주류세력’이 판치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덮기에 급급한 제주사회에서, 굳이 힘든 길을 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7대경관 범국민추진위원장과 우근민 도지사가 진실에 접근하려는 비판적인 시각들을 ‘흠집내기’로 매도하고 본질과 진실을 외면한채 도민들을 우롱하고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라 지요.

어떤 변명을 한다해도, 7대경관의 진실은 공신력도 실체도 의심스러운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개인적으로 만든 사기업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NOWC)의 돈벌이 캠페인에 공무원 투표 행정전화비를 비롯해 300억원이 훨씬 넘는 도민들의 혈세를 탕진했다는 것입니다.

행정전화비를 물기 위해 도의회가 지난해 1회 추경예산 심의때 20% 삭감한 전화투표비를 예비비에서 81억원을 도의회와 협의도 없이 개인 쌈짓돈 마냥 집행하기도 했지요. 지방재정법상 법령이나 조례에 따른 것이나 세출예산·명시이월비 또는 계속비 총액 범위의 것이 아닌 채무부담행위는 예산에 편성해서 도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도의회가 삭감한 예산을 예비비로 집행한 것은 불법성이 짙은데도 말입니다.

저금통을 뜯은 코흘리개 아이들을 비롯한 도민들과 각종 기관·단체·기업 등에서 거둬들인 투표기탁금 56억7000만원도 여기에 갖다 바쳤고요. 연간 6300억~1조3000억원이라는 경제파급효과도 제주발전연구원이 객관적 근거도 없이 지난 2007년 NOWC가 벌였던 ‘세계 신 7대불가사의’ 선정지역 관광객이 몇% 늘었다는 식의 주장을 토대로 추산한 것에 불과한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진실이 속속 드러나는데 따른 다급함을 모를바 아니지만, 제주 관광객이 늘어난 것이 지난해 11월에 잠정 선정된 7대경관 덕분인양 자랑하고, 신공항 조기건설이며 송전선로·송전탑 지중화 등의 관광인프라 구축 등 7대경관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들을 갖다 붙여 제주 경제영토 확장이니 뭐니 떠드니 눈뜨고 보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게다가 7대경관 선정 유공인사랍시고 무려 290여명을 한꺼번에 명예도민으로 위촉하려다 도의회에서 퇴짜를 맞았다니 ‘개념이 없다’고 할 밖에요.

강정의 ‘도가니’는 또 어떻습니까. 국무총리실이 구성한 크루즈선박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의 검증결과 도의회와 국회 해군기지 소위원회 등이 문제를 제기한 군함용 설계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현 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와 고마력 예인선 배치를 반영해 선박의 통항 안정성 및 접안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선박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고작이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 여기까지라는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생명·평화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들을 비롯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경찰 공권력과 이를 등에 업은 해군·공사업체에 인권을 유린당하고 강제연행돼 사법처리되는 기막힌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지요. 그곳엔 도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제주도 지방정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7대경관 놀음과 해군기지 강행 등으로 도민들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인권이 유린되는 제주의 ‘도가니’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습니다. 주민감사 청구에 나선 분을 비롯한 수많은 도민들이 진실 덮기를 거부하고, 강정 평화비행기의 평화와 환경, 생명과 인권을 노래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칭칭 뽀시게 아픈 고름을 들어내는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 아닐런지요.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