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일이 벌어지고 있다] 5. 안성리
제3호 기록사랑마을, 내달 전시관 열고 발굴영역 확대
유배길·추사관과 연계 움직임 올해부터 박차

대정읍의 동쪽 관문 안성리가 민간기록물로 마을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  

‘민간기록물’은 거창한 이름과 달리, 사실 역사가 오랜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집에 또는 마을회관에 켜켜이 쌓인 종이더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소중함을 알아 집안 어딘가에 고히 간직했고, 누군가는 오래전 불쏘시개로 구덕에 넣어버렸을테지만 이제라도 이 종이더미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수년째 보전 움직임을 갖고 있다. 

안성리는 이미 지난 2010년,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그 해의 ‘기록사랑마을’로 뽑힌 바 있다. 2008년 첫 해 강원도 정선, 이듬해 경기도 파주리에 이은 전국 세번째 지정마을이다.

▲ 추사 김정희는 대정읍 유배시절 송계순과 강도순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김정희 유배당시의 호적중초를 보면 강도순은 손자이고, 당시 호주는 강효검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김정희가 머물렀던 곳은 강도순의 집이 아닌 강효검의 집이라고 봐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문정임 기자.
▲ 안성리 마을복지회관 2층에 임시 보관된 절목과 정간. 이는 관아에서 마을의 행사, 주민생활과 밀접한 징세, 징역 등의 부당함을 헤아려 이에 대한 혁파규정을 담아놓은 책이다. 당대 민초들의 삶을 생생히 추정해볼 수 있다. 1839년의 것. 문정임 기자.

당시 안성리는 18세기 이후의 호적중초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제주목사가 삼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에 보낸 마을 첩지와, 관아에서 주민생활과 밀접한 징세·징역 등의 부당함을 헤아려 이에 대한 혁파규정을 담았던 절목 등도 보유하고 있다. 추사적거지가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도 기록사랑마을 선정에 가점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물에 대한 주민들의 의지와 애정이었다.

지난 17일, 2년만에 다시 찾은 안성리는 여전히 기록물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강추위속에서도 마을복지회관 3층에는 전시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는 주민들이 부단히 제주도와 접촉해 얻어낸 1억2000만원의 세금과 마을돈 3600만원을 보태 출발한 공사였다. 내달중 완공되면 이 곳은 마을기록물의 소중한 전시공간이자 소통의 장이 된다.

▲ 내달이면 안성리의 기록물 전시공간이 완공된다. 문정임 기자

주민들은 대정읍이 삼읍의 하나로, 이곳에서 발견된 기록물들이 향후 제주도 역사를 연구하는 데 생생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2010년 선정이후 마을에는 인하대와 경상대·제주대·국사편찬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연구자들이 다녀갔다. 성과도 있었다. 원나라를 본으로 하는 성씨가 안성리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대원 강씨와 대원 좌씨가 그들인데, 이는 경상대에서 성씨를 연구하는 한 교수가 안성리에 머물며 당시 주민들의 호적을 모두 훑어본 뒤 채집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원나라 본을 쓰는 성씨가 대략 5~6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중 일부가 대정읍 안성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물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안성리는 마을 지명 유래를 정확히 알게됐고,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일부 정정했다.

기록물사업을 중심에서 이끌고 있는 임영일씨(안성리)에 따르면, 기존 기록물들에서 대정읍 안성리는 동성리에서 이웃마을 인성리와 함께 분리돼 나온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호적중초를 보던 중 동성리가 안성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안성리에서 인성리가 분리돼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조만간 발간될 대정읍지에는 이 같은 새로운 사실이 기입될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일부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는 송계순·강도순의 집에 적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정희가 머물 당시 강도순 일가의 호주는 그의 할아버지인 강효검이었다.

강도순이 이후 김정희의 제자가 돼 많은 학문적 전수를 받는다지만 당시 강도순이 할아버지 강효검의 둘째 손자로 기록된 만큼, 김정희가 머물렀던 집의 호주는 강효검으로 바뀌어 기록돼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안성리는 올해 안성리외 다른 마을에 대한 기록물에도 여러 계획을 갖고 있다. 우선, 읍내 5개 마을을 대상으로 민간기록물을 수집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중요 료가 모아지면 영인본을 만들고 전시장을 찾는 이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한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보내 소독·복원처리하고, 기록물들의 목록을 만드는 한편 보관용 서고에서 자료를 차곡차곡 보전할 계획이다. 유배길이나 추사관 등 인근 자원을 활용한 움직임이 안성리 민간기록물 전시관과 연계되도록 대외적인 움직임도 분주히 가질 예정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록물에 대한 무관심이다. 주민들의 비협조는 기록물 발굴을 어렵게 하고, 행정의 무관심은 재정 지원을 막아 사업을 시작단계에서부터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임영일씨는 “기록물에는 당시 주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힌트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다”며 “민간기록물의 중요성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아쉬움과 기대를 함께 표했다.

마을의 역사자원과 이를 토대로 하는 스토리텔링이 각광받는 시대, 얇은 지식으로 목소리만 내는 영악한 마을들과 달리 안성리는 '사료 수집'이라는 전초단계에 우선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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