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영배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 조영배

전화벨이 울린다. 사이렌이 울린다. 해군과 건설사측이 벌이는 불법공사현장으로 나간다. 몇 몇 활동가들이 ‘법을 지켜라. 마구잡이식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러면 어디에선가 소위 용역들(경찰들?)이 나타나 활동가들을 붙잡는다. 2012년 강정마을에서는 이처럼 일상화가 되서는 안 될 것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래서인가. 이제 강정 주민들은 사이렌이 울려도, 경찰들이 누구를 잡아간다고 해도, 그런 특수상황을 점점 ‘그러려니’하는 일상의 관습으로 여길 지경이 됐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온 여러 시민운동들을 들여다보면, 그 시작은 대부분 매우 이타적(利他的)이며, 희생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이기적인 어떤 욕심’으로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시민운동은 대개 실패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시민운동 주체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라는 식의 이타적인 정신이 사라지고, ‘나’라는 주체의 어떤 욕심이나, 이기적인 공명심이 그 속에 똬리를 틀게 되면, 그 운동은 동력을 잃게 된다.

2012년 강정도 바로 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이기적인 공명심이 강정을 차츰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강정의 반대운동에는 ‘이기적인 돈 욕심’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이타적인 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반대주민들이 ‘돈에 대한 유혹’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위해’ 반대운동을 한다면, 그러한 반대운동은 거부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이기적인 공명심을 얻기 위해 반대운동을 한다면, 그러한 반대운동 역시 거부될 것이 자명하다.

강정의 반대운동이 명분을 잃지 않고 지속되려면, 모든 ‘이기적인 욕심과 공명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2012년 강정의 최대과제일 것이다. 이기적인 공명심에 사로잡힌 한 두 사람이 자기방식만을 항상 중심에 놓으려고 강요한다면, 반대주민들 역시 그러한 ‘이기적 공명심’을 거부할 것이다. 서로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다양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것을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12년 강정은 ‘타자를 서로 인정하는 이타적인 운동’을 다시 한 번 더 되살려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강정해군기지 건설 찬성이라는 독선과 반대라는 독선의 부딪힘 속에서, ‘이타적인 사랑’의 마음을 가진 선량한 대부분의 주민들만 희생당하는 제2의 4·3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화벨이 울린다. 마침 강정에 있었던 필자에게, ‘세리’라는 평화활동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의 쉰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교수님 어떻게 해요? 지금 바위가 깨어지고 있어요” 필자도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필자를 본 ‘세리’는 서럽도록 쉰 목소리로 ‘억억’ 울었다. 나도 눈물이 울컥했다. 강정주민들의 아픔에 온 몸으로 동참하며 ‘억억’ 울음을 우는 세리씨의 눈물이 하도 고마워 나도 코끝이 씽하게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저희들도 너무 지쳤어요. 몸도 너무 아파요. 그런데도 바위가 불법적으로 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쉴 수 있어요. 아파도 여기 나왔어요. 억억…’

세리씨의 눈물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자연과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려는 ‘이타적인 사랑’이 그 눈물 속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큰 고통이 일상화된 강정마을에 들어와 강정주민들과 그 고통을 온 몸으로 함께 할 수 있었으랴. 그런데 필자는 세리씨의 눈물에서 또 다른 아픔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너무 지쳤어요. 너무 몸이 아파요’라는 세리씨의 울음 속에는, 강정 땅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를 저지하겠다는 ‘이타적인 희생’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이기적인 공명심’들이 고개를 내밀어 강정을 짓누름으로써, 점차 동력을 잃고 있는 강정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통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강정주민은 물론 많은 시민활동가들이 해군기지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 땅의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이타적인 자기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강정은 바로 이 ‘이타적인 사랑과 희생’을 끝까지 지켜내어야 한다. 그 자리에 ‘이기적인 자기공명심’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강정의 반대운동은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명분마저도 잃어버릴 것이다.

2012년 강정 땅이여, 세리씨의 ‘이타적(利他的)인 눈물’을 기억하라, 이타적인 눈물이야말로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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