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종 / 문화활동가

▲ 지금종

제주도가 오는 9월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기간에 맞춰 ‘대탐라전’이라는 축제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정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름 : 대탐라전 △시기(언제) : 9월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기간에 맞춰 △목적(왜) : 해상왕국 탐라에 대한 인식을 정립·재조명하고, 이를 국제자유도시 제주의 미래 비전으로 공유하기 위해 △내용(무엇을) : ‘개방·교류·개척·도전’이라는 고대 해상왕국 탐라의 정신을 현대 제주인의 중심 가치로 체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신화·역사, 교류·협력 축제 등 기획 △실행 주최(누가) : 도내·외 축제 관련 학계, 문화예술계, 관련단체 인사 등 19명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 및 제주도에서 파견한 5~7급 공무원 5명을 비롯해 제주예총 등 관련 단체에서 파견된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무국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역의 역사성을 올바로 정립하겠다는 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고, 내용은 아직 드러난 게 없으니 말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대탐라전’이라는 이름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 그렇다. 충남에서 개최됐던 ‘대백제전’과 절반이 닮은꼴이다. 그곳에 관객이 몰렸었다니까 이름마저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대탐라전’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대백제전’이 떠오르는, 이런 패러디성 작명으로는 결코 ‘대백제전’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없다.

둘째, ‘대’자를 붙이는 것이 옳으냐하는 문제이다. 아직 탐라국에 대한 역사적 규명이 미흡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알고 있다. 즉 함부로 ‘대’자를 붙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설혹 탐라국이 컸다고 치자. 우리가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탐라국이 커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감동적 이유를 발굴해서 자긍심의 근원으로 삼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현재의 몽골이 칭기스칸 시절의 몽골제국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국의 역사에도 긍정적인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에겐 영광으로 기억되는 일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학살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자의 이면에는 침략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럼에도 굳이 도민들에게 탐라국 앞에 ‘대’자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을까. 바로 이것이 작명이 중요한 이유다.

셋째, 우근민지사는 지난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탐라국은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연결하는 국제자유도시의 역할을 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유추해볼 때 국제자유도시 실현이 우지사의 신념이고, ‘대탐라전’을 계기로 삼아 이런 신념을 도민에게 확산시키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우지사가 구상하는 국제자유도시의 내용이다. 대다수의 도민에게 좋은 호혜적인 개방과 교류라면 찬성이지만 소수의 이익, 혹은 다국적 자본의 이익으로만 귀착되는 그것이라면 반대이다. 더불어, 지도자의 신념을 퍼뜨리는 수단으로 축제를 이용하는 것은 문화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넷째, 축제 추진위원회의 면면을 보니 축제 전문가로 인정받는 전문가·학자 등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 동안의 추진 과정을 살펴볼 때 행정 주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농업인들이나 관광인, 수산인들 모두 자기들끼리 행사를 하는데 ‘대탐라전’ 때 행사 일정을 옮길 수 있는 것들은 도민 통합을 위해 옮기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우지사의 발언에서 더욱 확연하게 느껴진다. ‘대탐라전’의 규모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는 자칫 각각의 취지와 목표가 있을 것이 분명한 각 행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탐라전’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더욱이 이렇게 도지사가 판을 짤 거면 뭐 하러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축제감독을 선임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제주도에 좋은 축제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름엔 문제가 있지만 ‘대탐라전’도 잘 됐으면 좋겠다. 문화가 없는 관광은 반드시 임계점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를 성공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축제 개최에 관한 깊은 사유, 민간의 자율성 존중, 과학적 시스템 구축, 적절한 예산 지원, 전문 인력의 양성, 시민 참여 제고, 지속가능성 제고 등은 해야 할 일이고, 행정 주도, 정치적 이미지 제고나 전시성 사업 추진 등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런 원칙을 잘 지켜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원칙 없이 추진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마디만 더 하자. 축제 성공을 위해 필요한 전문 인력을 육지에서 초빙해서 쓰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도내의 인력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