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심한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불어옵니다. 연일 계속되는 눈 날씨는 온 섬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온 세상을 덮을 만큼이나 많은 눈이었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 만큼이나 오래도록 내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 많은 짐을 싣고 나르며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신구간(新舊間)의 언저리에 불어 닥친 심한 눈보라는 예정했던 많은 일정들마저 바꾸지 않으면 되지 않을 만큼 위력을 보였다고 합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웠던 2월의 날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순간 최대 소비전력량도 갈아 치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무탈하셨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화산섬, 제주에 살아오면서 이 보다 더한 흉년(凶年)과 전염병에도 견뎌 냈던 우리들이 아니었습니까? 황량한 들판에 겹겹이 쌓인 눈 속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를 맞으며 생활해야 하는 현실은 여간 감내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리 언 몸을 녹일 따뜻한 아랫목이 있고, 금방이라도 몸을 담글 수 있는 뜨거운 물의 욕탕이 있지 않으십니까? 거기에 더해 언제나 간편하게 요기로 떼울 수 있는 라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의 이 눈보라 보다 더 매서울 올 한 해의 살림살이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유럽에서 불어 닥친 금융 위기는 세계적인 불황을 부채질 하고,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FTA는 농·축 산업의 어려움은 가중시켜가고 있습니다.

또한 아랍권에서 시작된 오랜 독재에 대한 항거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분규로 확대되고, 나아가 원유(原油)의 가격마저 상승시킬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불특정 다수와 무한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고 보면 분명 녹녹치 않은 여건인 것만은 틀림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국민의 동참으로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면서 우리 제주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세계인의 환경올림픽인 WCC제주총회를 9월에 개최함으로서 1만 명이 넘은 세계인들이 우리 제주를 방문할 예정으로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전에 준비하고 미연에 방지해 왔던 전통을 살려, 어려운 여건이지만 올 한해의 살림살이도 내실 있도록 가꾸고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풍족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섣달이면 콩을 삶아 장(醬)을 담아 한 해의 먹거리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또한 정월 명절을 지내기 위해 제주(祭酒)를 담고 제물을 준비했으며,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액막이를 했던 전통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전쟁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 영웅일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마음으로 삶의 주인이 돼 사전에 준비하면서 오늘을 사는 당당한 영웅이 돼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시간은 머뭇거리거나 기다려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날아가는 화살처럼 이만치에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명절을 보내고 돌아선 자리, 추위와 눈보라에 부대끼며 겨우 몇일을 보낸듯한데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하루를 달리하며 세상은 변해가고 그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그 변화에 적응하라며 많은 것들을 강요라도 하는 듯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 경험과 화합을 중시했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를 모아, 우리 모두가 세계인의 관심과 도약을 준비하는 세계 7대자연경관의 섬, 제주의 주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진정한 영웅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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