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문권 / 천주교 제주교구신부

▲ 현문권

지난 1월19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실이 제주지역 총학생회자단과 가진 간담회가 있었다. 대학생들의 현안인 반값등록금, 청년실업문제, 제주지역 최대현안인 제주해군기지문제 등을 다뤘지만 정부인사들의 현실인식은 황당하기까지 했다(도민일보 1월24일자 오피니언, ‘청와대가 불통인 이유’).

청와대 인사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이분들이 정말 청와대에서 국민들을 삶의 질을 알고서 정책을 구상하는 분들인가?’ 할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큰 문제점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대화에서 청와대 임재현 국정홍보비서관의 발언이다. “그동안 농업정책이 너무 농민들 입장만 생각해 정부가 미래를 보고 주도하지 못했다. 왜 우리가 아직까지 쌀농사를 고생하면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없다.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2006년 1월16일에 방송된 겨우 4분밖에 안되는 EBS 지식채널e ‘쌀’이라는 영상이라도 보시기를 청한다.

현재 세계의 선진국들의 식량자급률은 100%가 훨씬 넘는다. 호주 150.6%, 프랑스 173%, 캐나다 150.4%, 미국 131.8% 정도 된다. 선진국들은 탄탄한 농업기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31개국 중 식량자급률이 28위이다. 대한민국 식량자급률은 약 26.9%, 그중에서 95% 이상이 쌀이다. 쌀을 뺀 식량자급률은 고작 약 5%이다. 저조한 식량자급률로 인해 대한민국은 세계5위의 식량수입국이기도 하다. 특히 현재 미국계 곡물회사 ‘카길’은 국내 곡물시장 80%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12월 ‘〈식량자급률 목표치〉 농업,농촌발전 기본계획 반영(안)’에서는 오히려 식량자급률을 더 낮추고자 했고, 2009년 7월 녹색성장위원회의 보고서는 “국제협력을 통해 안정적 식량 수급체계 구축”을 통해 대외 의존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둘 뿐 식량생산증대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농지전용을 부추기고, 4대강 사업을 통해 농경지로 이용하는 하천부지 약 1만5000ha를 없애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지금 추이로 보면 국제 식량가격은 계속해 가파른 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로인해 식량은 더 이상 식량이 아닌 국가안보와 직결되며, 식량의 무기화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적으로 식량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식량자급률이 높은 국가라 해도 식량을 수출하는 것을 막아버린다. 이는 우리가 2008년 러시아가 식량수출금지를 내린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만일 대한민국에 쌀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1970년대 식량파동으로 곡물 생산량이 3% 감소했을 때, 쌀가격은 무려 367% 상승했다. 1980년 냉해 발생으로 쌀 수입을 할 때 미국 곡물회사 카길(cargill)은 평균 쌀 가격의 3배를 요구했다. 미 국방성 비밀문서 펜타곤 보고서에는 “잦은 기상이변으로 10년후 세계는 식량부족에 시달릴 것이고 한국과 일본은 식량 확보를 위해 핵을 보유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식량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며, 핵무기를 개발할 정도로 위급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현재 거대 곡물기업들은 세계 곡물시장 70%를 장악하고 있고 이로인해 거대 공급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가격을 결정한다. 식량 자급률 26.9%와 쌀 자급률 95%를 지켜온 대한민국 국민의 약 6%인 350만 농민이 없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은 쌀 대신 핵을 보유할 것이다.

한미 FTA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쌀 수입 개방을 지켜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쌀은 이미 참여정부가 2004년~ 2014년까지 실질적으로 쌀 소비량의 13%를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그 30%를 밥상용으로 자유로이 수입하겠다고 양보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산 칼로스 쌀이 수입되고 있고, 2015년부터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협정을 맺어놓았기 때문에 한미 FTA에서 쌀을 지켜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쌀 뿐만 아니라 한미 FTA가 발동하면 대한민국의 농업과 농민은 궤멸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제주경제를 지탱하는 감귤농업이 다른 지역의 농업분야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2월6일 우근민 도지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FTA 현안 대응에는 행정시가 농협을 적극 앞세울 것을 주문했다(도민일보 2월6일 ‘농업공무원 해외서 배워오라’). 그런데 농협은 어떤 곳인가? 농민들 중 농협을 신뢰하는 이들은 없다. 농협은 더 이상 농민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의 금융기관이며, 지역상권을 흡수하는 마트를 운영하는 곳이며, 며칠전에는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농민들을 배신한 비료가격담합으로 농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과연 도지사는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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