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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지 않던 사람들…제발 좀 받아달라 “내게 중요한 건 아이들의 ‘진로’”월요일에 만난 사람〈7〉 설동식 서귀포고 축구팀 감독
선수 부족 등 힘든 상황서 ‘정성룡’ 맡아 트레이닝
우여곡절 10년 정성에 전국 축구명문 ‘서귀포고’ 쾌거
검증없는 지역선수 무조건 영입

“포장마차를 해도 일고·오고를 나와야 한다.”
당시만해도 서귀포지역(대정·서귀포중)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선수들은 모두 제주시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원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사정이 완전히 역전됐다. 서귀포지역 중학교는 물론 제주시와 타 시·도에서 축구 좀 한다는 유망주들이 서귀포고에 진학하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999년 축구불모지 제주에 정착, 서귀포고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설동식 감독을 만났다.

설동식 서귀포고 축구팀 감독
[제주도민일보 박민호 기자] 충북 청주 출신인 설동식 감독은 소위 말하는 ‘육지’출신이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설 감독은 대학(단국대학교) 4학년때 실업팀(대우)에 입단약속을 받았지만 그해 대학선수권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실업팀 입단을 포기한다. “당시만 해도 의료 수준이 지금과는 달랐어요. 구단에선 재활 후 재입단 하라고 했지만 제 스스로가 뛸 수 없다는 걸 알고 축구를 포기 했습니다” 설 감독은 이후 약 7년간의 웨딩앨범 사업을 한 후 미국으로 이민 길에 오른다.

4년간의 이민생활 도중 후배와 인연으로 제주로 오게 됐고 오희창·김성환 부장선생 등과의 만남으로 서귀포고를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부임 당시 만해도 서귀포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선수 자체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후 부족한 선수들을 채우기 위해 설 감독은 전국을 뛰어다닌다. 제주에선 선수들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사회에서 “포장마차를 해도 일고·오고를 나와야 한다”는 말을 들을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즘 경기도 광주에서 만난 선수가 바로 정성룡(26·수원)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어린 정성룡의 아버지는 설 감독에 아들을 맡기며 유언과 같은 말을 던진다. “성룡이 밥만 잘 먹게 해주세요…” 그렇게 설 감독은 어린 정성룡을 서귀포중에 입학을 시킨 후 서귀포고 대표 골키퍼로 키워나간다.

지난 세월 수많은 제자들과 인연을 맺은 설 감독 역시 “정성룡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다”라고 말한다.
전국을 누비며 하나 둘 선수들을 채워나갈때 마다 주위에선 “제주출신 선수들도 없는데, 이름만 서귀포고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설 감독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고 선수들을 지도해 나간다. 그렇게 10년. 서귀포고에 변화가 생겼다. 전국대회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는 선수들도 늘었다. 지난해 챌린지리그에서 A그룹 3위까지 오르며 축구명문 서귀포고 시대를 활짝 열었다. 18경기 35득점을 기록, 지난해 K리그 우승을 이끈 ‘닥공’의 전북(30경기·71득점)과 맞먹는 수치다.

설 감독은 “그룹 3위지만 득점은 제일 높았습니다. 질 때 지더라도 골을 넣고 지자라는게 제 축구 철학입니다. 비기는 축구를 해선 아이들이 발전 할 수 없어요.”

▲ 지난해 5월 열린 제45회 제주도민체전 남고부 축구 결승전에서 중앙고를 3대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서귀고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박민호 기자 mino@
전국 무대에서 서귀포고의 명성이 쌓여 갈수록 설 감독 역시 고민이 쌓여갔다. 바로 서귀포고가 지역출신 선수들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 부임 초 만해도 제주시 지역으로 떠났던 서귀포지역 중학생들이 이제는 서귀포고에서 안받아준다고 난리다.

지난 2010년 제주유나이티드 유소년팀으로 선정된 서귀포에는 현재 10여명의 제주출신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는 타 유소년클럽(2~3명)보다도 많은 수치다.

하지만 왜 지역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오는 걸까. 유소년팀 선정 이전까지만 해도 설 감독은 해마다 5~6명씩의 서귀포중 출신 선수들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서귀포고에 입단한 서귀포중 선수는 단 1명. 제주축구 단일팀 출전 사상 첫 탐라기 우승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올해도 서귀포중 출신은 1명”이라고 말한 설 감독은 “축구는 11명의 선수가 하는 스포츠다. 더구나 우리는 프로 산하팀끼리 시합을 하기 때문에 선수 한명 한명의 실력이 중요하다. 선수 한명이 실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팀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선수 선발에 신중을 기한다”고 말한다. 이어 “더욱이 지금은 구단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구단이 검증한 선수들을 추천 받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설 감독은“지금 서귀포고등학교가 잘 나간다고 도내 모든 우수 선수들을 흡수해 버린다면 제주지역의 축구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임 10여년 만에 전국의 축구 유망주들이 진학하고 싶은 명문고를 만들어낸 그는 아이들에게 실력만을 바라진 않는다. 그는 “선수 이전에 사람”이라며 인성 교육을 중요시 한다.

제주에 살면서 제주의 학교를 축구명문으로 만들기까지 ‘육지 사람이 육지아이들로 선수를 채운다’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지난 12년간 육지로 날아간 횟수가 1100회. 설 감독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게 좀 황당하죠. 자신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서울대 보내는 걸 자랑으로 알면서 축구 잘하는 아이들 제주로 끌어오는 건 잘못 입니까”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제주(추자도)출신이라고 좋아하는 국내 최연소 프리미어리거 지동원(선덜랜드)의 모교는 광양제철고(전남드래곤스)다.

최근 주말리그제 시행으로 참가팀 수가 급격히 줄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제주지역 전국축구대회에 대해 “차별화 만이 살길이다”고 말한다.

설 감독은 “참가팀들에 사정하면서 대회를 끌고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만의 차별화된 대회가 필요합니다. 가령 여름시즌 야간경기나, 저학년 리그 등 모두가 뛸 수 있는 대회로 만들어 참가팀을 끌어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제주에서 치러진 전국규모의 축구대회(백록기고교축구 26개·탐라기중학축구 26개)는 축구협회에서 정한 참가팀(25개)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자칫 올해 대회 허가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치러지는 전국규모의 대회를 살리기 위해 지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설 감독은 “각종대회에서 우승해 학교와 동문들의 명예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에게 있어 중요한 건 아이들의 ‘진로’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마음 껏 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박민호  mino@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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