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세상 읽기] 강정홍 / 언론인

▲ 강정홍

주민들의 목소리는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생활감정에서 우러난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그걸 들어야 합니다. 주민들 속에 집적된 그 사회적 에너지를 계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과 대화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절차에 쫓겨 그저 형식적으로 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썩 좋지 않습니다. 그건 일종의 속임수입니다. 이른바 ‘지방자치 시대’에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남루한 일입니까.

우리는 아직도 ‘수준이하’인지 모릅니다. 한쪽에선 일부 주민들의 출입을 막고…. 또 다른 한쪽에선 회의를 주재하던 지사가 30분 만에 자리를 뜨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주민들을 ‘통합대상’에서 제외하고, 사람 속을 긁어놓는 막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리고…. 하나를 가지고 열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식체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서 오늘의 행정행태를 가늠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닌 듯싶습니다.

“행정을 하다보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을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는 견해가 혹 있음직도 합니다. 어쩌면 요즘같은 ‘경쟁의 시대’에 그것도 옳은 견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지역의 주인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목적의 착각’입니다. ‘주민위에 군림하려는 발칙한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이런 따위의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진부합니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너무 즉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 극히 단편적이어서 산만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입맛에 맞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정제된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진실의 말’입니다. 그것은 전문적인 판단을 초월합니다. 거기에 흠이 있다면, 다만 정리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물론 주민들과 대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행정의 권능에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면 그 방법을 통해 얻는 효율은 매우 큽니다. 주민들은 항시 ‘목적시 되는 존재’일 때에만 신명을 다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서두에서 말한 사회적 에너지입니다.

지역의 갈등해소도 거기서 비롯됩니다. ‘여론’이라는 것도 별다른 게 아닙니다. 일정한 문제에 대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표현하는 의견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자명합니다. 특정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그리하여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여론을 중시하는 지방자치의 바른 자세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른바 ‘말께나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 말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침묵하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걸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항상 낮은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통’이 가능합니다.

주민들은 공격대상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설득’의 대상도 아닙니다. 분명 ‘소통’과 ‘일방적인 설득’은 구별돼야 합니다. 소통으로 위장한 일방적인 설득은 사이비입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기 보다는, 무조건 설득하려만 드는 행태야말로 세상의 모든 다툼의 원인(遠因)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건 ‘무엇이 주민들에게 좋은 것인지’를 관료와 이른바 전문가들만이 잘 알고 있다는 그 오만입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결정된 문제’를 막무가내로 관철하려는 그 억지입니다. 그것이 항상 사람 속을 긁어 놓습니다.

진실의 말이 끊어지면 참다운 관계가 끊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도 따지고 보면 ‘진실의 말’이 사라지고 ‘참다운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얄팍한 술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의 ‘진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심 없는 정직성’, 그것이 바로 ‘민주적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아쉽습니다. 우리 지방에선 아직도 그런 ‘민주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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